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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금융위기 때 씨티은행·BOA 국유화 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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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회고록 ‘스트레스 테스트’ 펴낸 가이트너.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정부가 대형 은행 국유화 논의를 진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런 구상은 막 집권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 내에서 공개적으로 거론됐다.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로 불렸던 로런스 서머스 당시 미 국가경제위원회 의장이 그 중심에 있었다. 서머스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씨티그룹이나 뱅크오브아메리카(BOA) 같은 은행들을 선제적으로 국유화하자고 제안했다. 금융위기 확산을 차단하자는 극약처방이었다. 이런 비화를 공개한 이는 티머시 가이트너(53) 전 재무장관이다. 그는 12일(현지시간) 나올 자신의 회고록 『스트레스 테스트:금융위기의 투영』과 뉴욕타임스(NYT) 인터뷰를 통해 이런 내용을 소개했다. 당시 서머스의 제안은 가이트너 등의 반대로 실현되지는 않았다.

 가이트너는 미국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재무장관(2009년 1월~2013년 1월)이다. 재임 중 무려 7000억 달러(약 718조원)를 부실자산 구제 프로그램과 월가의 대형 은행 구제에 퍼부었다. 모두 납세자의 돈이었다. 미국 경제가 금융위기에서 빠져나오긴 했지만 이 과정에서 불평등은 훨씬 심해졌다. 거리로 내몰린 중산층이 신음하는 동안 월가와 금융회사 주주들은 더 부유해졌다. 월가에선 나라를 경제적 파탄에서 건져낸 영웅이라고 가이트너를 치켜세우지만 평범한 많은 미국인은 그를 월가와 뱅커들의 꼭두각시라고 비난한다.

 회고록엔 비화가 많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결정을 놓고 당시 헨리 폴슨 재무장관-버냉키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가이트너 사이에 생겼던 균열도 그중 하나다. 당시 가이트너는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였다. 폴슨은 세금으로 구제금융을 하지 않을 거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원했고, 가이트너는 구제금융을 통해 은행을 살려 가치를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봤다. 리먼 파산의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삽시간에 불길이 금융시장 전역으로 번졌다. 그 뒤 미 정부가 대형 금융회사 파산을 방치한 사례는 없다.

 가이트너는 좋든 싫든 은행을 구하는 것이 미국 경제 시스템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자 궁극적으론 납세자를 보호하는 길이라고 봤다. 그래서일까. 그는 “대마불사(too big to fail)가 여전히 존재한다”며 “(금융산업의) 대마불사 관행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것은 마치 ‘모비 딕’을 잡으려는 것처럼 잘못된 발상”이라고 말했다. 막상 금융위기가 터지면 대형 은행을 구제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주장이다. 미국과 달리 일반 대중에게 돈을 푼 영국 정부의 처방에 대해선 “대체로 가짜(fake)”라고 비판했다.

 가이트너는 2010년 이후 금융위기가 한풀 꺾이자 사임의사를 밝히며 자신의 후임자 중 한 명으로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을 천거했다고 밝혔다. 힐러리의 ‘스타 파워’가 천거 이유였다. 그러나 이 추천은 오바마 대통령의 거절로 성사되지 못했다.

 그는 2013년 재무장관에서 물러났다. 그의 다음 행보에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 연준 의장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의 선택 과정엔 새겨들을 만한 대목이 있다. 그는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규제를 했거나 구제금융을 투입했던 은행이나 회사로는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정부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허물어 국가에 막대한 손해를 입히는 것이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지난 3월 사모펀드인 워버그핀커스에 합류해 사장을 맡고 있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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