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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산재 손실 = 차 138만 대 수출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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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이달 9일 오전 5시10분쯤 경북 포항에 있는 포스코 포항제철소 제2고로에서 정기수리 작업을 하던 중 폭발 사고가 났다. 이 사고로 설비보수 전문업체인 D사 소속 이모(53)씨 5명이 다쳤다. 하지만 포스코 소속 안전담당 직원은 ‘정기순찰’ 중이어서 사고 현장에 없었다. 포스코 측은 “설비보수 업무는 포스코건설의 몫”이라고 해명했다. 바로 전날인 8일에는 SK케미칼 울산공장 벙커C유 탱크에서 질식 사고가 발생했다. 탱크 청소와 코팅 작업을 하던 서모(49)씨 등 3명이 질식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날 오후엔 냉매가스 업체 ㈜후성에서 보일러가 폭발해 1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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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 관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졌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에만 1929명, 그러니까 하루 평균 5.3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꾸준히 줄어들던 재해 사망자 수는 2011년 이후 다시 증가 추세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근로자 1만 명당 사고 사망률을 나타내는 ‘사고성 사망만인율’은 0.73(2012년)으로 독일(0.18, 2008년)·일본(0.22, 2010년) 등 선진국에 비해 3배 이상 높다. 산업재해에 따른 연간 손실액은 19조2546억원(2012년 기준)으로 자동차 138만 대 수출과 맞먹을 정도다. 서울과학기술대 이영섭·김찬오(안전공학) 교수는 “최근 2~3년 새 발생한 안전사고는 안타깝게도 ‘닮은꼴 인재(人災)’”라고 진단했다.

 같은 사업장에서 반복적으로 대형 사고가 나는 것이 문제다. 현대중공업에선 계열사를 포함해 최근 두 달 새 8건의 인명사고가 터졌다.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는 지난해에만 파이넥스공장 화재, 가스 질식사 등이 일어났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선 2012년 이후 10여 명이 숨졌다. 김찬오 교수는 “유화·제철업계 사고 대부분은 노후설비 교체 중에 일어났다”며 “이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이 개·보수 주기 연장 등을 통해 비용을 절감했던 후유증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희생자 대부분은 협력업체 직원들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이영섭 교수는 “대기업들은 자사 사업장을 건설·엔지니어링 관련 계열사나 외부 협력업체에 맡기고 있다”며 “협력사들은 인건비 절감, 공기 단축에 관심이 커 안전 관리는 소홀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 근무 중인 1만여 명 중 절반을 차지하는 협력사 직원들은 주로 원료 운반이나 설비 수리 등 사고 위험이 높은 곳에 배치돼 있다.

 은폐·축소 의혹, 늑장 신고, 미진한 사후처리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굴지의 A자동차회사는 올 초 공장에서 중상 사고가 있었지만 해당 근로자를 산업재해 처리하지 않았다. “담당 임원이 승진을 앞두고 있어 사건을 숨겼다”는 소문이 돌았다. 지난해 말 호텔 공사 도중 인부 2명이 숨지는 사고가 났던 B사는 “재발 방지를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사고 경위를 공개하겠다”고 했지만 지금껏 별다른 조치가 없다.

 외국계 기업은 이와 대조적이다. 미국계 화학기업인 듀폰은 모범 사례로 꼽힌다. 이 회사 직원들은 입사 후 방어운전을 강화한 ‘듀폰 교통면허증’을 새로 발급받아야 한다. 화재에 대비해 철제 쓰레기통을 사용하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 반드시 손잡이를 잡아야 한다는 시시콜콜한 규칙도 있다. 사고 사례는 반드시 글로벌 본부 차원에서 공유해야 한다. 듀폰코리아 임정택 사장은 “너무 엄격해 보이지만 안전은 기업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강조했다.

  이영섭 교수는 “지금까지 산업 현장에서 ‘조기 완공’ ‘초과 달성’ 같은 ‘하면 된다’는 식의 도전정신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며 “이제는 이 같은 구호를 안전 매뉴얼 도입, 교육훈련 강화 등으로 대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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