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은 미래 세대 위한 예술교육의 현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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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4호 13면

“국립중앙박물관만으로도 한국을 방문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아쉽게도 이런 어마어마한 박물관이 한국에 있다는 게 홍보가 잘 안 되고 있다.” 세계적인 공공지식인 기 소르망의 평가다.

프랑스 오르세 뮤지엄 관장 기 코주발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이 색다른 행보를 시작했다. 오르세 뮤지엄과의 공동기획을 통해 근대 도시 파리와 파리지앤, 그리고 파리의 예술에 초점을 맞춘 전시를 마련한 것. 오르세는 루브르 박물관·퐁피두 센터와 더불어 프랑스 3대 미술관이자 세계 10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곳이다. 개막 행사를 위해 방한한 기 코주발(58·사진) 오르세 뮤지엄 관장을 만났다.

-알 만한 사람들은 ‘루브르보다 오르세’라고 권한다. 오르세 뮤지엄의 인기 비결은?
“우리의 장점은 컬렉션의 질이다. 인상주의·후기 인상주의, 1900년께 탄생한 새로운 회화의 흐름을 망라하고 있다. 1986년 개관했을 때 ‘오래가지 못할 거다’ ‘루브르와 퐁피두 사이에서 으깨질 것’이라는 말들이 있었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번창하고 있다. 관람객도 계속 증가해 수용 가능 인원의 피크에 도달했다. 매일 1만5000~1만9000 명이 오르세를 방문한다.”

-정치·경제를 비롯한 모든 인간 활동이 위기다. 새롭게 창조하고, 생각하고, 변모해야 한다. 박물관은 상대적으로 이런 도전의 ‘무풍지대’인가.
“박물관 또한 변화한다. 박물관은 현대성의 실험실이다. ‘파르티 프리(parti pris·결정된 의도, 큰 생각, 편향성 등을 의미)’라는 프랑스어는 다른 언어로 번역이 잘 안 되는 말인데, 오르세의 ‘파르티 프리’는 철학·정신분석학·사회사의 관점에서 다양한 주제의 전시회를 선보이는 것이다. 박물관은 미래 세대에게 예술을 교육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다. 교육 체제가 더 이상 수행하지 않는 기능이다.”

-루브르는 1848년 이전, 퐁피두는 1914년 이후, 오르세는 1848년에서 1914년까지 작품을 분담하고 있다고 하는데, 시기 분담을 둘러싼 갈등은 없나.
“1848~1914가 핵심이기는 하지만 오르세는 이 시기를 넘어선다. 18세기 말에서 1940년대까지도 다룬다. 루브르·퐁피두와의 갈등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다른 박물관도 시기 영역을 침범한다. 예컨대 몇 년 전 루브르는 ‘독일전(獨逸展)’에서 1800년부터 1939년까지를 다뤘다.”

-1848년 혁명에서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까지, 이번 전시의 배경이기도 한 이 ‘1848~1914’는 예술사적으로 어떤 시기였나.
“제2제국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 프랑스 제2제국(1852~1870)은 새로운 인간이 부상하는 시기였다. 파리가 세계의 수도로 리모델링됐다. 나폴레옹 3세가 오스만 남작과 더불어 파리 개조 사업(1853~1870)을 단행한 것이다. 나폴레옹 3세의 강력한 리더십 덕분에 가능했다. 그 이후에는 가능하지 않았다. 현대인의 삶에서 너무나 중요한 패션이 근대성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것도 이 시기다. 모든 이를 위한 패션의 시대가 개막한 것이다.”

-‘1848~1914’는 혁명, 사회주의의 부상, 제국주의·식민주의로 매우 혼란스러운 때였다.
“프랑스 혁명 기간에 위대한 화가들은 혁명을 지지했다. 왕정을 무너뜨리고 사회를 변혁시키는 데 동참했다. 하지만 19세기 예술가들은 상대적으로 사회 변화로부터 거리를 뒀다. 제2제국의 인상파 화가들은 정치적이지 않았지만 그들은 위대한 화가였다. 제정이 붕괴하자 그들은 공화정에 적응했다. 정치 체제는 그들에게 이슈가 아니었다.”

-제2제국 사람들은 정치적으로는 불만이었으나 예술에 있어서는 만족했던 것인가.
“제2제국에 대해 ‘모든 사람이 행복했던 마지막 시대’라는 평가가 있다. 당시 프랑스는 세계 최고의 부자나라였다. 풍요로움이 도처에 넘쳤다. 오늘의 파리는 그때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프랑스 사람들은 정권이나 통치자에 불만이 많고 국가에 반대하는 경향이 있다. 항상 그렇다. 19세기는 프랑스 사람들이 조금씩 공화정에 적응해 가는 시기이기도 했다.”

-행정가·작가·교수·큐레이터, 전시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 모든 임무를 수행하는가.
“나도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다(웃음). 한 가지 몰두하고 있는 일이 있다. 세계의 모든 사람을 오르세 박물관으로 부르는 것이다. 오르세를 찾지 않던 나라 사람들이 오고 있다. 30년 전에는 미국·캐나다·독일·일본 사람 정도가 오르세로 왔다. 지금은 브라질·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국가 등 모든 나라와 아이디어와 프로젝트를 공유하고 있다.”

-박물관에도 보안·안전 문제가 있을 텐데.
“캐나다에서 일하다 오르세로 부임했을 때 보안·안전 수준이 높지 않아 놀랐다. 북미 수준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더니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차츰 동의를 얻어냈다.”

-한국 박물관 애호가들에게 전할 말은?
“이번 전시회가 도심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돼 만족스럽다. 현재 오르세에는 프랑스어·영어·이탈리아어 안내 프로그램이 있는데, 곧 한국어·일본어·스페인어 안내가 추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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