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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살 모르는 모로코 여인 비결은 신이 내린 ‘황금 원액’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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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4호 16면

1 아르간 너트와 아르간 오일

아르간(Argan) 오일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마사지 오일, 각질 크림, 립밤은 물론 비누와 샴푸까지 거의 모든 미용제품에서 아르간 오일의 노화방지 효과를 강조하고 있다. 아르간 오일의 미용 효과가 서양에 알려진 건 20세기 말에 들어서다. 아르간 오일을 만드는 모로코 여성들의 손과 얼굴에 주름이 없는 것을 눈치챈 서양인들이 실험을 통해 그 탁월한 피부노화 방지와 개선 효과를 입증했다. 아르간 오일의 비타민 E 함량은 올리브 오일의 2배다. 비타민 E와 카로틴 함유량이 높아 피부의 산화작용을 억제하기 때문에 성인 여드름, 기미, 주근깨 등 피부 트러블을 막아준다. 규칙적으로 발라주면 피부 각질이 부드럽게 제거되고 염증이나 건선, 류머티즘의 진정 효과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또 아르간 오일을 먹으면 나쁜 콜레스테롤치를 낮추고 몸 안의 테러리스트라 불리는 유리기(Free radical) 생성과 피부 세포의 기능 저하를 억제해 준다고도 한다.

마지막 남은 ‘아르간 오일’ 산지를 가다

아르간 나무는 모로코 왕국 남서부의 항구도시 에사위라와 아가디르 사이의 반사막지대 수(Sous) 계곡 일대에서만 서식한다. 아프리카와 남유럽 부근에서도 자랐지만 점점 줄어 현재는 이 일대 약 82만8000헥타르(모로코 숲 면적의 약 7%)에서 약 2100만 그루만 자라고 있다. 유네스코는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은 아르간 숲을 보호하기 위해 1999년부터 이 일대를 생물권 보호지역으로 지정했으며, 모로코 정부도 아르간 나무의 해외 유출을 막는 한편 주변 개발을 금지하는 등 철저한 보호에 나섰다.

‘궁극의 오일’ ‘신이 선물한 황금 원액’이라 불리는 이 신비의 오일을 찾아 중앙SUNDAY가 아프리카 모로코로 향했다.

2 사막의 좌표 역할을 하던 아르간 나무
3 아르간 열매와 딱딱한 너트, 그리고 그 안에서 추출되는 커널

유네스코서 보호지역 지정 … 매년 4000t 생산
카사블랑카에서 마라케시까지 기차로 3시간30분, 그곳에서 다시 관광 버스로 갈아타고 3시간을 달려 모로코 남서부 대서양 연안의 에사위라까지 가는 길은 멀고 지루한 것 같지만 신기하고 흥미롭기도 하다. 출발해 한두 시간 정도는 나무보다 사막의 붉은 흙이 더 많이 보이는데 어느 순간부터 한 종류의 나무가 자라는 숲이 길 양 옆으로 펼쳐진다. 올리브 나무 같지만 잎이 더 초록색이고 촘촘하며 가지는 소나무처럼 구불구불한, ‘신의 선물’이라 일컫는 아르간 나무다(박스 기사 설명 참조).

에사위라에 도착한 다음날 오전, 근교에서 아세즈 우제카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오마르 엘자무르 사장과 함께 그의 조합을 방문하기 위해 차에 올랐다. 이 협동조합은 유럽 친환경유기농인증(ECOCERT)과 미국 농무부가 인증한 유기농 화장품 인증(USDA)을 받은 중소기업이다. 제품 대부분은 수출하며 한국과도 매년 2t가량의 거래가 있다고 했다. 이곳에서는 약 20명의 여성들이 아르간 열매에서 너트와 핵(커널)을 분리하는 일을 한다.

4 너트에서 분리된 아르간 커널 5 맷돌에 아르간 커널을 가는 모로코 여인 6 질이 떨어지는 커널은 오일로 짜기 전에 선별되어 버려진다 7 조합에서 아르간 열매를 손으로 쪼개는 동네 아주머니들

협동조합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30분. 여섯 명의 여인들이 바닥에 포대 자루를 깔고 앉아 다리 사이에 큼직한 돌멩이를 끼우고 작은 조약돌로 열매를 하나씩 깨어 딱딱한 너트와 너트 안의 커널을 분리하고 있었다. 눈먼 여인도 하나 있었는데 손놀림은 여느 여인 못지않게 능숙했다. 이 여인들에게는 껍데기를 제외하고 수확된 알갱이의 무게를 재어 1㎏당 35디람(약 4500원)이 지급된다. 열심히 하면 하루 1㎏을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일당이 5000원도 안 되는 꼴이지만 일이 있어 행복하다는 표정들이었다.

작업장 구석 화덕 옆 큰 바구니에는 구워낸 커널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무슨 맛이 나느냐”고 물어보니 한번 먹어보란다. 향기가 고소하니 아몬드처럼 맛도 고소할 것이라 생각해 냉큼 집어먹었는데 아무 맛도 없고 쓰기만 했다. 얼굴을 찡그리며 입을 쩝쩝 다시니 재밌다는 듯 왁자하게 웃어댔다.

그중 한 여인이 구워진 커널을 맷돌에 넣고 갈자 죽 같은 것이 대야로 떨어져 내렸다. 한가득 모인 죽에 물을 조금씩 넣으면서 반죽을 저어줬는데 처음에 죽같이 곱던 것이 점점 딱딱한 덩어리로 변했다. 그렇게 한 30분쯤 물을 넣으면서 반죽하니 오일과 아르간 비지가 분리됐다. 여인은 이 비지를 손으로 꾹꾹 눌러 오일을 최대한 짜내고 잘 빚은 된장처럼 둥그렇게 만들어 다른 대야에 담았다. 대야에 남은 오일은 뚜껑 달린 플라스틱 통에 담아 보관소로 가져갔다. 찌꺼기는 버리지 않고 가축(특히 소)의 먹이로 되판다.

이렇게 전통 방식으로 아르간 열매에서 오일을 구하는 데 총 58시간이 소모된다. 100㎏의 아르간 열매에서 과육 부분을 제거하면 약 7.2㎏의 너트를 수확할 수 있고, 이 너트를 쪼개 6.5㎏의 커널을 얻는다. 이 커널을 짜서 확보할 수 있는 아르간 오일은 겨우 2㎏밖에 되지 않는다. 연간 총 생산량은 4000t이며 이 중 75%가 수출된다.

8 아르간 나무에 올라가 열매와 잎을 따먹는 염소들 9 코즈메틱용 아르간 오일은 토스팅하지 않고 바로 오일로 짠다 10 관광객들을 위해 마련된 시식코너. 바로 구운 빵이 즉석에서 제공된다.
11 코즈메틱용 아르간 오일은 전통 모로코식 용기에 담겨서 팔리기도 한다.

열매 100kg서 오일 2kg 추출 … 식용은 들기름 비슷
아르간 오일로 만들 수 있는 제품군은 크게 식용, 미용, 그리고 아믈루(Amlou:아르간 오일, 아몬드, 꿀을 혼합해 만든 모로코 전통 요리용 크림) 세 종류다. 식용 오일은 110도에서 약 15분에서 30분간 토스팅을 한 커널을, 미용에 사용되는 오일은 생커널을 짜서 만든다. 식용 커널을 토스팅하는 이유는 오일의 향과 더 진한 색상을 얻기 위해서일 뿐 식용과 미용 오일의 성분에는 큰 차이가 없다. 식용 오일은 빵에 찍어먹거나 야채 샐러드에 뿌려 먹는다.

작업실 옆 매장에 시식 코너가 있었다. 갓 구운 납작한 아랍식 빵을 가져와서 떼어주었다. 오일은 들기름과 비슷한 맛이 났는데 좀 달랐고, 오일이 담긴 꿀은 달콤 고소한 기막힌 맛이었다. 질퍽한 아믈루는 땅콩버터에서 단맛이 빠진 듯한 촉감과 맛이 났다.

맞은편 방에는 생커널을 일일이 점검해 나쁜 종자를 가려내고 좋은 품질만 사용해 코스메틱용 오일을 짜는 곳이었다. 코스메틱용 오일은 분리기와 여과기를 사용해 현대식으로 대량 생산한다.

어느새 조합 맞은편 나무 위에 한 무리의 염소들이 올라가 열매와 잎사귀를 먹고 있는 것이 보였다. 목동들은 관광객들이 찾는 조합 주변에 염소 떼를 몰고 와 진풍경을 연출하고 사진을 찍은 외국인으로부터 팁을 받아 부수입을 챙긴다. “열매가 익어 떨어지는 계절에는 염소들이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망을 칩니다. 염소가 과육을 먹고 너트만 뱉어내는데, 염소가 먹고 뱉은 너트에서는 염소 냄새가 나기 때문에 좋은 오일을 얻을 수 없어 사용하지 않습니다.”

나무에 가시가 많아 올리브 열매처럼 사람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수확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열매는 땅에 떨어진 것을 줍는다. 안내원은 “나무는 누구의 것도 아니며 자기 땅에 떨어진 열매만 농민들의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열매를 따서는 절대 안 된다”고 설명했다.

아르간 오일 사업은 300만 명에게 일자리를 주었다. 특히 협동조합들은 빈곤 지역 여성들에게 일터는 물론 교육의 장으로도 기능했다. 2003년 벨기에로부터 1억3400만 디람(약 174억원)을 지원받는 등 외부 원조 이후 아르간 오일 제작 환경은 크게 개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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