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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광주랑께, 전략공천이 뭔 소리여” … 시험대 오른 안철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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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4호 04면

새정치민주연합 당원 100여 명이 지난 6일 새정치연합 광주시당에서 “헌 정치 바로잡아 광주의 민주주의를 살리자”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당 지도부가 윤장현 광주시장 후보를 전략공천한 데 반발해 이날 집단으로 탈당계를 제출했다. [뉴스1]

“옛날엔 노란 깃발만 꽂으면 무조건 당선된다고 했잖여. 근디 인자는 시대가 바껴버렸어. 아니, 딴 데도 아니고 광주에서 전략공천이 뭔 소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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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오후 광주광역시 양동시장.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는 김춘식(56)씨는 새정치연합의 윤장현 광주시장 후보 전략공천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광주시장은 광주시민이 뽑아야지 안철수·김한길이 광주에서 뭘 했다고 제멋대로 결정하는 것이여. 우리가 핫바지여.” 가게 앞에서 과일을 팔고 있던 양춘례(63·여)씨가 한마디 툭 던졌다. “여긴 광주여, 광주랑께.”

 금남로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주부 이영미(42)씨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아무래도 보기가 안 좋지요. 윤 후보도 사람이 괜찮던데, 정정당당하게 했으면 시민들이 알아서 찍어줄 건데 왜 이렇게 우세를 사는지 모르겠네요.” 옆에 서 있던 40대 여성은 “윤 후보 지지선언을 했던 광주지역 국회의원 다섯 명은 벌써부터 ‘5적’으로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깃발만 꽂으면 될 줄 아나. 시대가 바껴버렸어”
광주 민심이 심상찮다. 새정치연합 지도부가 지난 2일 밤 전격적으로 윤 후보를 전략공천한 데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다. 당내 경선을 준비 중이던 강운태 시장과 이용섭 의원은 즉각 탈당한 뒤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도 급변하는 현지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3일 리서치뷰 조사에서는 전략공천 찬성이 35.8%, 반대가 48.5%로 나타났다. 또 강 후보와 이 후보가 단일화할 경우 윤 후보를 20%포인트 이상 앞섰다. 4~6일 리얼미터의 지지도 조사에서도 윤 후보는 강·이 후보에 밀려 3위에 그쳤다.

 시민들은 특히 안 대표에 대한 실망감을 강하게 표출했다. 화정동에서 노무사 사무실을 운영하는 진재영(43)씨는 “지금 같은 정치구조로는 미래가 없다는 생각에, 광주에서도 독식 구조를 깨야 한다는 절박감에 광주시민들이 ‘안풍’을 지지했던 건데 그런 안 대표가 광주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초래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전남대생 박영식(24)씨도 “안 대표는 윤 후보가 ‘광주의 박원순’이랬는데, 비유를 해도 왜 그렇게 하느냐. 박 시장은 당당히 경선해서 시장이 되지 않았느냐”고 꼬집었다.

 한 택시기사는 이렇게 분위기를 전했다. “내가 올해 환갑에 광주 토박이인데도 윤 후보가 누군지 잘 몰라. 아닌 것은 아닌 것이여. 기사들끼리 얘기해봐도 (전략공천) 잘했다는 말은 거의 없당께.” 또 다른 기사는 “전남과 전북도 경선하는데 왜 광주만 전략공천이냐”며 “그러니까 안 대표가 정치공학적으로 자기 사람만 챙긴다고 비판받는 것”이라고 했다.

 새정치연합 지도부의 결정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만만찮았다. 북구 일곡지구 네거리에서 채소를 파는 50대 아주머니는 “기존 정치인은 다 똑같잖여. 뽑아놓으면 맨날 쌈만 해쌌고. 윤장현인가 하는 사람 하는 거 봐서 웬만하면 찍어줄랑께”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다른 상인도 “오죽하면 그랬겠느냐. 안철수도 다 생각이 있으니까 그랬긋지”라고 했다. 쌍촌동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차성수(61)씨는 “광주가 제대로 바뀌려면 참신한 후보에게 공천을 주는 게 맞다. 기존 후보를 공천했으면 ‘도로 민주당’이란 비난을 피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전략공천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

 새정치연합 광주시당 관계자는 “광주시 유권자가 113만 명인데 그중 당원이 23만 명이나 된다”며 “당원들 여론이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가 민심의 향배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일화 변수 속 5·18이 민심 분수령 될 듯
선거운동 현장에서 만난 후보들은 ‘정면 돌파’를 한목소리로 외쳤다. 이용섭 후보는 “전략공천이 아니라 정략공천”이라며 “누구나 공천하면 당선될 거라는 두 대표의 오만함이 광주시민의 선택권을 빼앗아갔다”고 비판했다. 강운태 후보도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 광주는 물론 호남에선 전략공천이 일절 없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도 함부로 낙점하지 않았는데, 안 대표가 DJ도 아니고…”라며 각을 세웠다.

 현지에선 두 후보의 단일화를 광주시장 선거의 최대 변수로 꼽고 있다. 두 후보도 단일화에 원칙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뉘앙스는 조금 달랐다. 이 후보는 “공정한 여론조사가 보장된다면 못할 이유가 없다”며 “늦기 전에 단일화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적극성을 보였다. 반면 강 후보는 “1등 후보의 지지도가 두드러지면 단일화 요구도 줄지 않겠느냐”며 판세를 좀 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지지도 조사에서 8~10%를 꾸준히 얻고 있는 무소속 이병완 후보도 무시 못할 변수다. 치열한 3파전 속에서 이 후보가 캐스팅보트를 쥘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에 대해 이 후보는 “강운태·이용섭 후보 모두 연대를 제의하고 있지만 4년 단임과 광주연립정부 공약을 통해 당당히 심판받겠다”며 독자 완주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에 대해 전략공천을 받은 당사자인 윤장현 후보는 “이미 지난달 16일 경선에 응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였는데 이렇게 돼서 안타까울 따름”이라며 “공천 문제를 놓고 안 대표와 사전에 그 어떠한 논의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행정 경험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지금 광주는 행정의 기술이 필요한 때가 아니다”며 “지금은 비록 민심이 좋진 않지만 진정성 있게 살아온 이력을 꾸준히 알리면 시민들도 현명하게 선택해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광주시장 선거는 후보들의 당락을 넘어 새정치연합 지도부에도 적잖은 파장을 불러올 전망이다. 특히 안 대표가 주변의 우려와 반발에도 불구하고 윤 후보 전략공천을 강하게 밀어붙인 만큼 선거 결과에 따라 안 대표의 정치적 위상도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분석이다.

 만약 윤 후보가 현지 여론을 반전시키며 당선에 성공한다면 안 대표도 당내 입지를 다지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냉엄한 승부사’ 기질을 입증하면서 “정치 아마추어”라는 비판을 잠재울 수도 있다. 반면 무소속 후보가 당선될 경우 안 대표는 명분과 실리를 모두 놓치며 정치적으로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될 공산이 크다. 광주시장 선거를 둘러싼 내홍에 당 안팎의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 현지에선 15~16일 후보자 등록에 이어 18일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지나면서 광주의 민심이 보다 분명히 드러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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