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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서의 종횡고금 <11>여우에게 가죽옷을 맡길 수 있나 … 역사에서 찾아본 세월호의 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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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고대 중국의 기서(奇書) 『산해경(山海經)』을 보면 우리나라와 관련된 기록이 있다. ‘동해의 안쪽, 북해의 모퉁이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다. 하늘이 그 사람들을 길렀고 물가에 사는데 남을 아끼고 사랑한다.(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名曰朝鮮. 天毒其人, 水居, 人愛之)’ 이 기록은 발해만을 끼고 있던 고조선을 두고 한 얘기이다.

 옛날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을 아끼고 사랑한다고 중국에 소문이 날 정도였다. 그러나 후세에 지어진 『속산해경(續山海經)』이라는 책을 보자. 이 책에는 다른 기록이 보인다. ‘조선의 남쪽 바다에 괴상한 배가 있다. 이 배를 타면 선장이 배를 버리고 달아나 물에 빠져 죽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해변에는 호곡(號哭) 소리가 진동한다.’ 물론 이것은 필자가 『산해경』을 패러디한 허구의 기록이다.

 우리는 너무나도 참담하고 황당한 일을 겪었다. 이 나라가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신화 속 괴물들이 판치는 세상과 다름이 없다는 사실을 눈뜨고 매일 경험했던 것이다. 하긴 리더의 위치에 있는 인물이 결정적 상황에서 무책임한 작태를 보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임진왜란 때는 수많은 관료와 장군이 지켜야 할 고을과 군대를 버리고 도주하는 바람에 백성들이 어육(魚肉)이 되었고 급기야는 선조 임금도 야반도주를 하다가 성난 군중들로부터 돌팔매 세례를 받기도 했다.

 심지어 한말의 위급한 상황에서 조차도 충청도의 한 의병대장이 ‘성을 버리고 도망가는(棄城逃走)’ 일이 있었다. 이 바람에 그를 추종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던 일이 죽은 의병들의 유필(遺筆)을 통해 나중에 밝혀지기도 했다.

 K팝과 드라마 등 세계인을 매료시켰던 한류의 문화강국, 최첨단 IT제품과 자동차를 수출하는 기술강국 등, 우리는 그 동안 쌓아 올렸던 국가 브랜드 가치가 한순간에 추락하는 변고를 겪었다. 사망자와 실종자 가족들의 애통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국민 모두도 마음의 상처를 입고 신음 중이다. 어떻게 해야 이 국가적 재난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무엇보다 국가의 시스템 불량으로 희생된 선객들의 가족에 대해서는 나라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보상을 다하여 그 원통함의 일말이라도 풀어줘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기를 포기한 행위를 한 선장과 선원들에 대해서는 응분의 엄벌이 가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수인일 뿐 그들의 배후에는 이익만 탐하는 악덕 기업주가 있으며 다시 더 이면에는 이 모든 악덕과 비리를 가능하게 한 관계(官界)와 유관 업계의 유착, 이른바 ‘관피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 이들에게 개혁을 요구하고 감독을 맡기는 일은 애당초 소용없는 짓이었다.

 고대의 사상가 갈홍(葛洪)은 소인배와 함께 깨끗한 정치를 도모하는 일을 ‘여우와 더불어 갖옷(가죽옷)의 제작을 상의하는(與狐而議作<88D8>)’ 것으로 비유한 적이 있다. (『포박자(抱朴子)』 ‘박유(博喩)’편) 제 가죽으로 옷을 짓겠다는데 여우가 순순히 따르겠는가. 우리나라의 관료사회 그리고 각 분야의 시스템이 그간 이러한 행태로 작동돼 왔다는 것은 경악할 일이었다. 우리는 피로사회 정도가 아니라 횡액(橫厄)을 당할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사회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진정 ‘여우와 더불어 갖옷의 제작을 상의하는’ 행태의 시스템을 철폐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가 반드시 잇따르게 될 것이다.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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