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민중』|신경림 산문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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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970년대의 한국문단을 풍미하는 『농무』의 시인이 이번에는 산문집 『문학과 민중』을 펴냈다. 신경림의 시는 많은 독자들에게서 경이로운 충격과 칭송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투정을 불러일으키는 수가 있다. 즉 시골 소읍의 술집과 노름방과 장터와 근동이 엉겨서 빚는 감상적 분위기의 한계성이 과연 그가 의도하는 민중문학의 본색일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견해를 지닌 이가 있다면 저자의 이 책을 읽음으로써 생각을 고치게 될 것이다. 근년에 저자는 시를 쓰는 한편으로 가끔 이론적인 산문들도 발표해왔다.
『민중과 지식인』 「문학과 민중』등 이 산문집에 실린 이론들은 저자의 시 세계가 결코 감상적일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오늘을 사는 뭇사람들의 의식에 보람과 사명을 주며, 그 나름의 따스함과 착한 선동으로 정열을 주고 있음을 증명해 준다.
민중 속에 들어서 있는 자만이 지식인일 수 있다는 점, 오늘에 있어서도 농촌현실은 곧 한국적 현실의 본질이라는 점을 관념화가 배제된 정직한 이론과 구체적인 역사적 예증으로써 설득하고 있다.
이러한 정신적 토대 위에서 저자는 지난날 한국 문단에 횡행하던 「양반」의 시, 선비의 시, 건달의 시가 말의 장난과 생각의 미미한 꼬투리에 매달려서 끄적거리던 파행성을 일갈한다. 이것이 이 책의 목소리다.
그의 자작시론들은 또 그의 뛰어난 시들 보다도 더 뛰어나 있는 것 같다.
순수한 강원도 매밀 막국수를 연상케 하는 저자의 글은 또 글보다 글 쓴 사람을 더 좋아하게 한다.
구중서<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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