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로서아 황제의 빚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몇 년 전 일본을 떠들썩하게 한 3억「엔」강탈사건이라는 것이 있었다. 68년 12월「도오시바」공장 종업원에게 줄 2억9천4백만「엔」을 실은 현금수송차가 졸지에 털린 것이다.
경찰관으로 가장했던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일본에서 강도범의 공소시효는 7년. 일본경찰청은 7년 동안 10억「엔」의 수사 비를 들여 추적했지만 허사였다.
공소시효가 끝나는 75년 12월 경찰은『최후의 순간까지 범인 체포에 전력을 다했다. 할말없다』고 손을 들었다. 그러나 손해배상 청구권 시효는 20년이니까 사건이 종결되려면 아직도 10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빚을 지더라도 채무가 소멸되는 시효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채권의 경우 10년, 채권·소유권 이외의 재산권에 대한 채무 소멸 시효는 20년이다.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빚이 있다.
국가간의 채무가 바로 그것! 중세에는 국가는 왕의 사유물이었다. 그래서 왕이 다른 나라에 진 빚은 왕의 개인 빚이었다. 한 왕가가 무너지면 채무의 의부는 저절로 소멸됐다.
그러나 근대국가가 성립되고 부 터는 달라졌다. 국채나 정부가 보증을 선 공채는 국가의 빚이다. 따라서 정권이 바뀌어도 빚은 갚아야 한다.
보불전쟁 때「프랑스」는 50억「프랑」의 배상금을 물게 됐다. 전쟁을 저지른 것은「나폴레옹」3세였다. 강화조약은 제3공화국의「티에르」가 체결했다. 그 사이에 연립정부들이 들어섰지만 10년 동안 배상금을 완불했다. 책임이 누구에「프랑스」라는 국가의 빚이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소련공산당 서기장「브레즈네프」가「프랑스」를 방문했다.「지스카르」「프랑스」대통령은 제정「러시아」때「짜르」황제가 빌어 간 3천만「프랑」을 갚으라고 요구했다. 이때의 금화 3천만「프랑」이면 요즘시세로 3조「프랑」(3백조 원)이 된다. 엄청난 돈이다.
「브레즈네프」는 이 요구를 묵살했다.「볼셰비키」정권은 혁명 다음해인 1918년 제정「러시아」가 걸머진 모든 외채를 전부 무효화하는 국채파기 선언을 했다. 이 때문에 피해를 본「프랑스」예금자들은 1백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브레즈네프」는 이것을 구실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그는 국가간의 채무에는 시효가 없다는 국 찰 관례에 고의로 눈은 돌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제정「러시아」의 재산이 있다. 정동에 있는 구「러시아」공사관 자리가 그것이다.
고종이 사 여한 땅이다. 해방 후 미소공동위의 소련대표도 이 건물에 숙소를 정했다. 언젠가 소련과 관계가 개선되면 그들은 이 땅의 권리를 주장할지 모른다.
대한제국도 당시「러시아」의 수도「페테스부르크」에 공사관을 두고 있었다.「슈발츠스핀스키」가 18호의 한 건물을 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1905년 외교권이 일본에 넘어갔으니 이 재산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알 수가 없다.
아무튼「돌려주는 법을 모르면 돈을 빌지 말라」는 말이 있다.「레닌」이 이왕 엎지른 물일망정「브레즈네프」라도 주워담는 시늉을 해야 할 일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