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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꽂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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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마가다」국왕은 석가가 내왕한다는 소식을 듣고 정원사에게 제일 아름다운 꽃들을 따오라고 일렀다. 왕의 분부대로 꽃들을 따서 바구니에 넣고 왕성으로 돌아오던 정원사는 석가일행과 마주쳤다. 그는 석가를 보자마자 온몸에서 솟아오르는 기쁨을 억제하지 못하고 그만 바구니속의 꽃을 모두 석가 위에 던졌다.
그후에야 제 정신이 든 정원사는 왕명을 어긴 죄로 목숨을 잃을 것이라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기만 했다. 아내는 남편에게 마지막 밥이라도 지어주려고 울면서 밖에 나갔다. 그러나 뜻밖에도 텅 비어있을 바구니속엔 이 세상에서는 보지 못할 아름다운 꽃들이 꽂혀있는 것이었다.
아각세주수결경이라는 경전에 있는 우화의 한 토막이다. 꽃꽂이 얘기는 불경에는 흔히 나온다. 『벽에다 불상을 그려놓고 한 송이 꽃을 공양 올려도….』 이런 귀절은 법화경에도 자주 나온다. 불본행집경에는 꽃장사 얘기까지 나온다.
부처의 양쪽에는 보통 범천과 제석천이 지키고 있다. 둘을 구별하기는 어렵지 않다. 손에 두루 마리나 꽃바구니를 들고 있는 쪽이 범천이다. 기예천상도 왼손에 꽃을 담은 접시를 받쳐들고 있다.
이렇게 불교예술에서는 꽃꽂이가 자주 나온다. 우리 나라 해인사 대적광전의 벽화에도 꽃꽂이가 나온다.
꽃꽂이의 기원이 공화에서 시작됐다니까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공화에는 격식이 있었다. 원래는 어디에나 편재하는 부처를 위하여 꽃에 앞뒤가 없도록 둥글게 꽂아 놓았었다. 그렇던 것이 둥근 화환이 되어 꽃의 앞이 부처 쪽이 아니라 사람 쪽을 보도록 놓게 되었다.
부처에게 헌화한다면서 사람 쪽을 보게 놓는다는 게 이상하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엔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
『꽃은 나보다는 시름에 찬 너희들에게 더 필요할 것이다』라는 부처님의 뜻을 따른 것이라고 할까.
이렇게 본다면 꽃꽂이가 불상이 생긴 기원1세기부터인지 아닌지를 따진다는 것부터가 쑥스러운 일이다.
최근에 일본 꽃꽂이 단체들이 한국에 상륙했다하여 꽃꽂이 계가 술렁이고 있다. 그렇게 위협을 받을 만큼 한국의 꽃꽂이의 전통이 약한 것은 아닐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일본의 꽃꽂이의 원조는 한국이다.
일본에서 국보로 여기는 조수희화권에는 꽃꽂이 그림이 있다. 그런데 이 허화도도 원효·의상을 종조로 모신 고산사에 있다.
문제는 꽃꽂이가 양국의 생활감정에 따라 우리는 화염병에 담는데 치우치고 일본은 화분에 세우는데 치우친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오늘의 우리네 미의식을 얼마나 꽃꽂이를 통해 표현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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