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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환기씨 작품 평가싸고 논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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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 나라 현대미술의 가장 주목받는 화가의 한사람인 수화 김환기씨의 작품에 대한 종래의 평가를 반박, 전혀 새로운 비판론이 대두돼 화단의 주목을 모으고 있다.
소장 미술평론가인 김윤수씨 (전 이대전임강사)는 수화가 작고한 뒤의 지난 2년 동안 국내에서의 갖가지 찬사와는 반대로 『역사의식이 결여된 「모더니스트」에 불과하다』고 깎아 내렸다.
수화는 최근 거의 우상화하다시피 선망의 존재로 부상돼 온 게 사실. 지금까지의 김환기론은 대체로 『서구시대 정신에 입각해 개성을 실현해 나간 개인주의적 화가였으며 한국미의 현대적 표현에 힘쓰다가 마침내는 새로운 추상화로 국제무대의 인정을 받은 작가』라는 것.
이런 찬사일변도의 작품론에 맞서는 김씨의 비판론은 앞으로 화단에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없지 않다.
우선 그는 이경성씨의 수화 초기 작품론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나섰다.
이씨가 초기작품 『론드』(1938년)에서의 인물취급은 그의 자연주의적 체질 때문이라고 한데 대해 김씨는 『반 자연주의적인 조형의 세계를 그린 입체주의 작품』이라고 정반대의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즉 『론드』는 인체의 형태 및 배경을 직선과 곡선으로 색면 분할해 구성한 그림이며 인물취급은 입체주의자들처럼 하나의 「모티브」로 이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초기 작품중의 하나인 『섬의 이야기』(1940년)도 형태간의 조형성을 실험하고 색채의 울림과 「리듬」을 추구한 흔적이 역력한 입체주의적 추상이라는 것.
김씨는 수화의 8·15 해방 후(1945∼50년) 도불시절(1952∼64년), 「뉴욕」시대(1964∼74년)의 작품에 대해서도 최순우·이일·유준상씨 등과 견해를 달리하고 있다. 그는『동양의 멋이 철철 흘러 넘치는 사람』(최순우), 『동양적자연인의 풍취』(이일), 『수화는 우리 민중 바로 그것』(유준상)이라는 종래의 수화론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모더니즘」이 본질적으로 불건강하고 퇴폐적인 속성을 지닌 것이라고 볼 때 김환기가 「모더니스트」로서 출발한 사실이나 추상화가로서 거둔 성과가 그렇게 값진 것만으로 평가될 수만은 없다』는 게 김씨의 지론이다. 수화가 50년대에 자기·학·매화·달·꽃·구름·산등을 통해 한국미를 추구한 것도 엄밀한 의미에서 추상으로부터 구상으로 관심이 옮겨진데 불과한 것이지 그의 「모더니즘」에 근본적 변화는 없었다는 것.
수화가 그처럼 강조한 미술에서의 「장난」(창작)과 「질서와 균형」이 아무리 진지한 것이었더라도 현실 세계와 절연하고 「정신의 고도심도」를 순전히 현실에서만 찾았음은 일종의 정신적 유희일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그가 추구한 「예술은 민족의 강력한 노래」라는 것도 결코 민중의 절실한 삶을 함께 했다고 할 수 없는 그에게 있어 도자기 등의 주제는 민족의 추상일 뿐이었다는 것.
「한국미의 전형」이라는 항아리·학 등을 통해 추구한 수화의「멋」은 그 주제들이「모티브」에 지나지 않으며 미적 요소의 자율적 표현성에 의해 그 현실성을 상실했다고 김씨는 꼬집고 『수화의「멋」은 전통미의 일면을 나타내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 민족적·민중적 그림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는 것.
김씨는 『수화가 민족적인 것을 우리의 절실한 삶의 현장이 아니라 가장 한국적인 것의 특색에서 찾으려 했다는 것은 역사감각의 결여를 뜻하며 정확한 의미로는 그의「모더니즘」 의 한 섭주에 지나지 않는 현실도피·몰 역사주의의 한 형태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지론에는 현대미술을 민중의식 면에서만 평가될 수 있느냐는 점등 논쟁의 불씨를 안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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