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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해상의 전별 만찬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북극의 고도 「스피츠베르겐」여행의 출항지인 독일 북부의 「브레머하펜」으로 20여일 만에 돌아올 때엔 여객선 「오이로파」호에서 해상 전별만찬회를 열어 주었다.
여러 가지 촛불을 켠 찬란한 식당엔 모두들 정장하고 나왔기 때문에 여행의「무드」보다는 어떤 궁전 속의 잔치와도 같았다. 식사는 독일식「풀·코스」「디너」인데 「스페인」제의 강한 백포도주인 「세리」가 나오는 등 온갖 대접을 하는 것이다.
이 송별회에서도 군인출신인 독일의 갓 늙은 신사가 『북해작전 때엔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느라고 「스피츠베르겐」제도며 그 밖의 딴 해역에서 자연미를 감상할 겨를이 없었으나 다행히 제2차 대전에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이번에 이「스피츠베르겐」의 오묘한 자연을 보고는 신의 창조물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발견했다』고 말했다.
식탁을 둘러싸고 이렇듯 값진 이야기에 꽃을 피우는데 간부급 선원들은 여러 식탁을 일일이 다니면서 『어서 많이 드십시오』하며 정중히 인사를 한다.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에 우리 식탁을 맡고있던 「웨이터」가 필자에게 책의 크기 만한 곽을 주면서 『동양 음식이 그리우셨지요? 도와드리지 못한 것이 죄스러워 이 변변치 못한 것을 드립니다』한다. 통에다가는 이「웨이터」가 「사인」을 했는데 이 곽 안에 든 것은 다름 아닌 미술적으로 인쇄한 여러 가지 식사 「메뉴」였다.
식사가 끝난 뒤엔 송별무도회가 벌어진다고 한다. 선장 이하 여러 간부들이 「홀」입구에서 환영을 하였다.
성장한 모든 선원들과 함께 술잔을 들고 인사를 나눈 다음 항해장이 들고 나온 것을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이번 북극권 여행에의 항로를 세밀하게 기록한 해도였다. 이것은 선장이「사인」한 것으로서 경매에 붙인다는 것이다. 필자는 혹 제비를 뽑거나 아니면 가장 갖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주는가 했는데 경매라는 바람에 그만 풀이 죽고 말았다. 공개입찰을 하는데 한창 각축이 벌어지더니 『드디어 1천1백 「마르크」(약23만5천원)에 낙찰되었습니다』한다. 이것을 차지한 사람은 다름 아닌 군인 출신의 갓 늙은 그 독일신사였다.
슬그머니 질투가 생기지만 영예로운 이 북극권여행해도를 차지한 그 독일신사에게 가서 우선 축하한다고 하고는 『당신께선 2차 대전 때 싸움터에서 세상을 떠났더라면 그 피 비린 작전지도를 갖고는 천국에 감히 들어갈 수 없지만 평화순례를 위한 이 해도를 갖고는 천국에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은 제가 몹시도 갖고 싶었던 것입니다만 아마 하느님께선 당신이 가지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여 주신 것으로 봅니다』라고 나도 모르게 선망과 질투와 축복이 묘하게 얽힌 인사를 했다(다음날 그를 찾아 그 해도를 빌어서 나의 지도에다 복사했다).
이 해도낙찰이 끝난 뒤엔 선장부처의 춤으로 시작한 송별 무도회가 취주악단의 반주로 일제히 벌어졌는데 혼자 외로이 앉아서 이들의 우아한 춤을 보노라니 이 세계가 지상천국으로만 생각되었다. 그러나 불현듯 북받치는 것은 우리 조국의 전쟁으로 말미암은 비극적인 숙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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