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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한 「서울외환시장」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서울에 독자적인 외환시장을 형성해 보겠다는 정부의 시도는 약간 때 이른 느낌이다.
그것은 두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된 연후에 가능하다. 우선 자본자유화의 단계로 이행할 수 있는 제반 여건의 성숙을 기다려야한다. 이치대로라면 이는 무역의 자유화나 외환거래의 자유화를 수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제 간 자본이동을 지배하는「룰」은 예외 없이 보편성을 지니므로 이런 선행조건의 충족은 거의 필수적이다.
또 하나는 외환시장을 개방함에 따라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국제통화불안의 충격을 직접 흡수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 능력을 명확히 계측할 기준이 모호하다 해도 전체적인 경제활동 규모나 무역의존도, 외환거래규모와 국제수지계획 등으로 간접적인 유추가 가능하다. 이 두 가지 전제는 그러나 내부적인 요인들이다. 더 많은 조건과 가정이 외부로부터 제기될 수 있다.
물론, 정부의 외환시장구상은 앞으로의 정책과제일 뿐 당장의 현실성을 주장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외환시장이 하나의 정책과제로 제기된 이상,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은 충분히 사전에 검토를 해볼 필요가 있다.
외환시장의 개방이 곧 자본자유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해도, 최소한 그것을 지향하는 추세만은 부인할 수 없다. 경제개발을 무역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는 개방체제의 단계적 이행이 불가피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점진적이라야 한다.
당장 문제되고 있는 무역자유화만 해도 현실적 당위 못지 않게 자유화이후의 정책대응이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는 것처럼 우리 경제는 지금 과도기에 처해있다. 비록 경상수지가 최근 1, 2년 동안 크게 개선되었다 해도 우리의 국제수지구조는 아직 근원적인 안정기조에 정착했다고는 결코 보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향후 2,3년 간 그것이 지속적으로 개선된다는 전망도 아직은 확실하지 않다.
정부가 성급하게 무역자유화로 치닫거나 외환관리를 한꺼번에 터놓는데 대해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제규모의 확대에 주름을 미치지 않을 정도의 「기술적 조정」에 그치고 국제수지의 변화를 당분간 더 지켜보는 신중이 필요하다. 외환시장의 형성은 대외 수지구조의 근원적 안정을 이룬 뒤에 검토해도 늦지 않다.
다만 4차 계획에 소요되는 외자의 공급원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확보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외환시장구상의 근본 배경이 되고 있는 이 문제는 다양한 민간 「레벨」의「채널」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다고 본다.
이 경우 국내에 진출한 외국금융기관이 큰 몫을 차지할 것이나 그것이 굳이 외환시장의 형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는 보기 어렵다.
더구나 국제통화체제가 아직도 불안정한 현실에서 너무 일찍 외환시장을 운영할 경우 있을 수 있는 파동의 충격을 감당해낼지도 의문이다.
또 외국금융기관의 대량유치가 경영기술의 혁신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국내금융과 마찰을 일으킬 소지도 적지 않다.
특히 자본「리스크」를 보상해주기 위한 갖가지 유인이 제공될 경우 그럴 가능성은 한층 높아진다. 따라서 외환시장의 구상은 전진적인 자세로 검토한 뒤 모든 단계적 검증을 마친 연후에 착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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