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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세상보기] 석유가 액체로 저장된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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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라크 전쟁에는 대량살상무기 테러 지원국 제거라는 명분과 석유 확보라는 실리가 뒤얽힌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석유하면 부시 대통령의 고향 텍사스의 목장 주인 록 허드슨과 유전으로 신흥 부자가 된 제임스 딘,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그린 영화 '자이언트'가 떠오른다. 이 기회에 왜 석유가 에너지원으로 특별한지 생각해보자.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은 쌀밥에 고깃국을 먹는 세상을 약속한 적이 있다. 쌀은 식물이고, 고기를 제공한 소도 식물을 먹는다. 식물은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광합성을 하니까 결국 우리는 태양에너지를 먹고 살아가는 셈이다.

태양에너지의 근원을 어디까지 추적할 수 있을까? 46억년 전에 태양이 생긴 후 지금까지 태양은 수소의 핵융합 반응을 통해 빛과 열을 내고 있다.

핵융합 반응이 에너지를 내는 것은 아인슈타인의 E=mC2 식에 따라 수소 질량의 일부가 에너지로 바뀌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빅뱅 우주에서 만들어진 수소의 질량을 먹고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소는 핵융합을 통해 에너지를 내는 것과는 달리 화학적인 연소를 통해서도 에너지를 낸다. 아연 조각에 산을 가하면 수소가 발생한다. 1766년에 캐번디시가 수소를 발견한 것은 이런 반응을 통해서였다.

수소를 풍선에 모아 불길을 갖다대면 공기 중의 산소와 폭발적으로 반응하면서 물로 바뀐다. 그런데 수소는 가볍기 때문에 같은 무게로도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수소를 연료로 사용하는 연료전지로 움직이는 자동차를 만들면 효율도 높이고 대기 오염도 줄일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문제는 수소는 우주에서 가장 풍부하지만 원소 상태의 수소(H2)는 가볍기 때문에 지구에는 별로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지구의 중력은 수소를 붙잡아 두기에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태양에서 멀리 떨어진 목성과 토성은 거대한 수소 덩어리다. 지구에도 수소가 어느 정도 있기는 있다. 그런데 지구에 있는 수소의 대부분은 오대양의 물에 붙잡혀 있다. 수소가 산소와 반응해 물이 돼야 에너지가 나오는데 이미 물이 됐으니 물에 들어 있는 수소는 에너지 면에서는 쓸모가 없다.

마치 바닷물을 청평댐 위로 끌어올려 수력발전을 하는 것은 밑지는 장사인 것과 마찬가지다. 물을 끌어올리는 데 발전으로 얻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수소가 쓸모 있는 형태로 저장된 것이 적지 않게 있다. 바로 석유다. 석유는 그 날아가기 쉬운 수소를 탄소가 붙잡고 있는 탄화수소(炭化水素)다.

흥미롭게도 탄소는 석탄에서 볼 수 있듯이 고체인데 고체인 탄소와 기체인 수소가 만난 석유의 탄화수소는 액체다. 액체이고 보니 고체처럼 운송 차량이 필요 없고 송유관만 있으면 쉽게 옮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물에서와 달리 석유에서는 수소를 붙잡고 있는 탄소 역시 쓸모 있는 에너지원이다. 수소가 산소와 반응하면 물이 되면서 에너지를 내듯이 탄소가 산소와 반응하면 이산화탄소가 되면서 에너지를 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석유는 연소해 에너지를 낼 수 있는 수소와 탄소가 화학결합을 이루고 있는 대단히 유용한 물질이다. 그렇게 귀중한 석유가 지상의 몇 군데에 집중돼 있다 보니 문제가 생긴다. 막상 궁극적인 에너지원인 수소는 우주 전체에 널리 퍼져 있는데 말이다.

북한은 전력난이 심각하다. 우리나라도 발전량의 상당 부분을 수입 석유에 의존하고 있다. 이래저래 이라크 전쟁을 지켜보는 심정이 착잡할 수밖에 없다.

金熙濬(서울대교수·화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