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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의 대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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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산유국이 재채기를 하면 세계는 벌써 감기에 걸린다. 오늘의「에너지」위기는 세계의 체질을 그처럼 바꾸어 놓았다.
지난 11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유전에서 일어난 화재는 어느새 일본의 금융시장까지 뒤흔들고 있다. 기세가 등등하던 「엔」화가 하루아침에 폭락하는가 하면 외환시장에 때아닌 열기를 불어넣었다.
원유 도입량의 65%를「사우디아라비아」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 나라의 경우도 충격은 마찬가지다.
화재의 피해가 클수록 석유 수입 국들의 감기도 심각해진다.
이번 불이 일어난 「아브콰이크」유전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최대의 산유량을 갖고 있는 지대다. 1일 산유량이 무려 87만 「배럴」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하루 6백만 「배럴」 의 수송능력을 가진 송유관마저 파열되었다.
석유는 불길이 닿으면 그 가열로 인한 「가스」증발까지 일어나 한 순간에 밑바닥까지 태운다. 그 화재전파속도는 매초 5m나 된다. 더구나 「탱크」와 같은 밀폐된 상황 속에서는 「가스」의 압력 파가 발생해 매초 2천m의 무서운 속도로 불길이 번진다.
「사우디」유전의 이번 화재는 무려 30여 시간이나 계속되었다. 하루 5백만 「배럴」의 감축을 가져올 정도였으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최근 미국의 CIA는 「카터」대통령에게 제출한 특별보고서에서 1980년대의 석유위기를 예언하고 있었다. 70년대의 후반에 살고 있는 인류는 불길한 내일을 마치 불길을 보듯 내다보고 있는 것 같다.
현대의 문명구조는 하나에서 열까지 석유 「에너지」에만 기대고 있다. 석유에서 생산되는 부산물만 해도 무려 7천 가지에 달한다. 인류는 석유를 먹고, 석유를 입고, 석유를 태우며 나날을 살고있는 것이다.
한 산유국의 1개 유전에서 일어난 화재가 세계의 불안요인이 되는 세상은 「아이러니컬」 하기만 하다. 한 순간의 화재가 아닌 정작 고갈의 위기에 직면하면 석유는 어떻게 될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현실은 머지않아 닥칠 것이며 그 시기도 예측보다 더 앞당겨 질 것이라는 견해들이 지배적이다.
「아브콰이크」유전의 불길은 새삼 오늘에만 안주하는 모든 나라들에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단 한 방울의 석유도 나오지 않는 우리 나라 같은 경우는 더구나 「피안의 불」일 수만은 없다.「아라비아」사막에서 일어난 「피안의 불」에도 콧물을 흘리는 현실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내일을 생각하는 「에너지」정책이야말로 나라의 백년대계를 이루는 기초가 될 것 같다. 불 구경을 하고 있을 한가한 처지는 벌써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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