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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시대의 혁신 전략] 위기일수록 실패 책임 덜어줘야 역발상 나온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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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호 21면

저성장에 직면한 기업엔 공통점이 세 가지 있다. 첫째, 위기엔 현찰이 최고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2013년 기준 10대(금융사 제외) 그룹의 82개 계열사 현금 유보율이 전년 대비 44% 증가한 477조원에 이르렀다.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은 선도적 투자보다는 곧이어 닥칠지 모르는 더 부정적 상황을 대비해 피해를 축소하는 데 익숙하다. ‘Cash is King(현금 확보 최우선)’ 전략은 운영 비용을 줄이고 인적 자원을 최소화하며 예상됐던 모든 매출을 쥐어짜게 된다. 그러나 이는 미래 매출을 현재 가치로 할인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미래 성장에 필요한 ‘근육과 뼈’마저 모두 소진해 버리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② 저성장에 직면한 기업들의 증상과 처방전

둘째, 자기만 챙기는 이기적 습성을 가지고 있다. ‘Clean House(비효율이 없는 회사)’ 만들기에 집중한 회사들은 사업 운영 전반의 군더더기를 죄악시하고 이를 없애기 위해 불요불급한 외부 제휴 또는 파트너십을 소홀히 다루게 된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에 회사가 자신을 먼저 챙기게 되면 향후 경쟁에서 우군 확보가 어려워지고 나아가 종업원과 이해관계자들의 사기를 저하시켜 회사에 대해 부정적 전망을 확산시키는 악순환에 불붙이는 상황이 된다. 의외로 경기불황 시기에는 작은 시도를 통해서도 파트너와의 관계를 강화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무심하게 방치하는 것과 윈-윈의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은 결과의 차이가 크다. 콘티넨털 항공사는 ‘웅크리지 않은’ 좋은 예다. 콘티넨털 항공사는 파산과 이어지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소비자 평가기관인 JD파워스 평가를 좋게 받을 수 있을 만큼의 투자를 감행할 돈이 없었다. 그 대신 콘티넨털항공은 직원조합과 함께 우리사주를 발행하고 고객 만족도 향상을 위한 다양한 혁신적 과제들을 함께 수행했다.

애플 아이튠즈는 R&D 아닌 발상 전환 산물
셋째, 혁신 투자는 연구개발(R&D) 지출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애플의 사업 성공은 R&D에 의한 제품 성능 향상이 아님을 다 알고 있다. 디지털 콘텐트에 대한 소비자의 불편함과 공급자의 불안감을 아이튠즈라는 플랫폼 형태의 새로운 사업모델로 묶어낸 게 성공의 비결이었다. 이처럼 혁신의 성공사례 중 상당수가 기술 개발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사업을 구성하는 영역 전반에 걸쳐 새로운 시도들을 적절히 조합한 데서 나왔다. 불확실한 경제 상황에서 R&D 투자를 유보하는 것은 합리적 의사결정일 수 있다. 그러나 혁신 투자를 R&D 지출과 동일시하여 업무 전반의 다양한 개선 노력들마저 위축시켜선 안 된다. 혁신의 범위는 고객 경험, 유통 채널, 내부 프로세스, 외부 파트너 등 사업영역 전반에 걸쳐 이뤄지는 새로운 시도로 인식되어야 하고 그 노력들을 전사 차원에서 종합 관리하게 되면 저성장 속에서도 위험요소를 방어하면서 동시에 큰 결과를 예상해볼 수 있다.

이러한 증상이 나타난다면 먼저 전문가의 진단이 필요하다. 저성장 상황에서 각각의 기업들을 진단할 때는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진단한다(그림 참조). ‘전진하기’ 유형은 예상치 못한 이종 산업에서 신사업 또는 업무 제휴 소식을 전하는 구글이나 아마존이 대표적이며, ‘생존 갈림길’ 모델은 구조조정이나 인수합병(M&A)의 운명을 기다리는 회사들이다. 반대로 현금 확보가 안 된 상황에서도 꾸준히 새로운 혁신을 모색하는 신생 벤처회사들이 ‘미래 준비’ 유형이다. 앞서 언급한 ‘Cash is King’ ‘Clean House’ 또는 ‘혁신은 R&D’라는 개념이 익숙한 대부분의 회사들은 자원의 여유가 있으면서 잔뜩 웅크리는 유형에 속한다고 진단된다.

위기 땐 혁신 통해 우수인력 유치해야
혁신 투자에 대한 당위성이나 방향을 찾지 못한 이런 ‘웅크리기’ 유형의 회사들에는 몇 가지 처방을 제시할 수 있다.

첫째, 새로운 평가 기준의 제시다. 기업은 언제나 이기는 쪽에 돈을 걸고 싶어 한다. 경기위축 상황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새로운 사업 제안이 회사 외부에서 부단히 제기되더라도 선뜻 나서서 책임을 떠안기는 쉽지 않다. 이때의 해결 방안은 합당한 평가 기준을 새롭게 제공하는 것이다. 불확실한 리스크를 개인이나 부서가 단독으로 감당하지 않도록 공동의 평가·보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신상품이나 신규 사업의 평가는 단기 결과만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고 정량적 분석 기준도 누구나 수긍하는 상식 선에서 작성되기 쉽다. 이런 판단 근거로만 의사결정 한다면, 미국 시장에서 현대자동차가 실행한 ‘10년·10만 마일’ 프로그램이나 고객의 실직 상황을 가정한 ‘바이백(buy-back)’ 등의 성공적 마케팅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새로운 시도를 과감하게 실행에 옮겨 고객 신뢰를 확보하고 장기적으로 신차 판매량을 늘릴 수 있었다

둘째로 혁신 프리미엄의 활용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혁신 프리미엄은 혁신적인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더 누리게 되는 일종의 추가적인 보상이다. 예를 들어 수익모델도 확실하지 않은 페이스북이 기업공개 시 100조원 이상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보여준 혁신적인 서비스와 기업 운영에 기인한다. 또한 아마존의 영업이익률이 2009년 4.6%, 2010년 4.1%, 2011년 1.8%, 2012년 1.1%로 지속 하락함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지속 상승하는 디커플링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혁신 투자가 향후 결실을 발생시킬 것임을 시장이 인지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혁신 프리미엄은 혁신을 추진하는 경영진에 힘을 실어 주고 경기 침체기에 좋은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나아가 자유롭고 창의적인 근무 환경을 조성하는 혁신제도는 우수인재 유치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최근 스탠퍼드, MIT, 하버드 등 명문 경영대학원 졸업생들이 보수가 좋은 금융기관 취업을 미루고 근무 환경이나 성취감이 높은 첨단기술 업체로 취직하는 비율이 20% 이상 증가한 사례는 경기 불황이 내부 혁신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저성장 시대를 맞아 단기 성과에 집착하고 미래 가치를 무시하거나 그에 상충하는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때 도전적 활동을 취하는 것을 현금이 풍부한 일부 회사의 사치 혹은 특권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하는 것은 ‘웅크리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현금 확보를 최우선으로 하고 핵심 역량에 집중하는 것은 단순히 죽음까지의 시간을 연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전히 경기 회복 이후에 도약하고자 한다면 ‘연구하고 남과 다르게 행동하라’는 관점에서 기존의 보수적 원칙을 전향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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