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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의 ‘생각의 역습’] 직관은 판단인가 느낌인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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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호 29면

우리의 행동은 자신도 모르게 점화되는 생각과 감정에 영향을 받는다. 특히 점화 효과로 촉발되는 감정은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직관적 판단에 강력히 개입한다. 다음 이름들을 천천히 읽어 보자.

버락 오바마, 시진핑, 아베 신조.

이들은 모두 외국인이지만 당신에게는 매우 익숙할 것이다. 이들의 이름을 읽는 순간, 당신의 머릿속에서는 자연스레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을 것이며 동시에 이들에 대한 좋고 싫음 같은 감정적 선호가 동반되었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당신이 이들에 대해 아는 것은 대부분 언론을 통해 접한 것일 뿐, 실제 이들을 만나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을 것이다. 즉, 당신은 이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생각이 점화되는 방향대로 감정을 느끼고, ‘좋다 혹은 싫다’와 같이 직관적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직관은 겉으로 드러난 몇 가지 단편적 정보만으로 즉각적인 판단을 하고, 그것을 지나치게 맹신한다. 예를 들어 처음 만나는 사람의 첫인상만으로 우리는 상대에 대해 직관적인 평가를 내리는 데 매우 익숙하다. 첫인상이 형성된 이후 상대의 대화나 몸짓을 통해 들어오는 후속 정보는 이미 우리가 내린 직관적 평가의 맥락에서 해석될 뿐이다.

원시시대 우리 조상들은 사냥길에서 만난 낯선 이를 가급적 짧은 순간에 친구인지 적인지 판단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보는 즉시 판단’하는 습관은 우리 뇌 깊숙이 자리 잡은 무의식적 본능이다. 또한 자신의 직관적 판단을 번복함으로써 스스로에게 도전하기보다 직관을 확신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장기 생존을 추구하는 본능에 더욱 부합한다. 이러한 무의식적 맹신은 자신의 직관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생각 자체를 떠올리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극단적이다.

경험 혹은 통찰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직관적 판단은 대부분 생각의 점화 효과에 의해 연상적으로 떠올려진 결과일 뿐이다. 충분히 숙고하는 과정이 생략된 직관적 판단은 사실적 판단이라기보다는 감정적 느낌일 확률이 높다. 문제는 감정에 빠질수록 사람들은 세세하게 따지기보다 점화된 정보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직관적 판단을 내리기 때문에 논리적 오류에 빠져들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정보의 정합성이 주는 인지적 편안함은 긴장을 해소시키고 이를 잘 해석한 자신을 우월하게 느끼기 때문에 즐거운 감정으로 연결된다. 반대로 정합성이 떨어지는 정보를 억지로 해석하거나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선 불가피하게 인지적으로 집중해야 하는데, 그 강도가 심해지면 즐거운 감정을 느끼기 어렵다. 예를 들어 아무리 행복한 순간이라도 ‘73×89’를 재빨리 암산해야 한다면, 적어도 이를 계산하기 위해 집중하는 순간만큼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질 가능성이 크다. 의식이 인지적 에너지를 투입하는 동안에는 무의식은 즐거움이라는 감정의 수도꼭지를 잠가놓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눈앞에 드러난 정보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점화되는 생각과 감정을 고려하면 이성적 판단은 늘 무의식의 도전을 받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감정이 이끄는 성급한 판단은 맹신으로 향하는 위험한 출발점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생성되는 직관을 쉽게 믿으면 안 된다.

누구나 이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감정의 개입을 의식적으로 배제한 이성적 판단은 실제로 발휘하기 어려운 능력이다. 자제력을 발휘해 감정을 통제하고, 충분히 숙고하는 과정을 거쳐야 얻을 수 있는 것이 귀한 것이다. 귀한 것은 쉽게 얻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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