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 23m 내려갔지만 … 실패로 끝난 다이빙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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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인

1일 오후 2시20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바지선 한 척이 서서히 부두로 다가왔다. 이종인(62·사진)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와 그의 ‘다이빙벨(diving bell)’ 등을 태운 배였다. 바지선이 부두에 닿자 함께 탔던 실종자 가족들이 먼저 내렸다. 흥분한 듯 소리쳤다. “이 대표가 실종자 가족을 농락했다. 다이빙벨이 만능인 것처럼 말한 게 누구냐.” 이날 새벽 다이빙벨이 내려갔으나 시신 인양에 실패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3시20분쯤 민간 잠수사 3명이 탄 다이빙벨을 물속에 넣었다. 10여 분에 걸쳐 수중 23m까지 내려갔다. 잠수사들이 다이빙벨에서 나와 세월호 선체 4층 뒷부분 객실 입구로 향했다. 하지만 입구에서 가로막혔다. 이미 설치된, 선체 내부 길을 표시하는 줄인 ‘유도 라인’과 이불·가방 같은 것이 입구를 막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이빙벨이 물살에 흔들리면서 바지선과 다이빙벨을 연결한 줄이 선체 밖으로 비어져 나온 유도라인에 엉켰다.

 잠수사들은 엉킨 유도라인을 끊었다. 하지만 더 이상 수색작업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물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이들이 물 밖으로 나온 시간은 오전 5시17분. 물속에 약 2시간을 있었다. 그중 45분은 오르내리는 데 걸린 시간이다.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다. 이 대표는 다이빙벨이 물 밖으로 나온 뒤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투입할 사람(잠수사)이 없어 철수해야 할 것 같다”면서 “75분 작업하고 올라온 데 의의가 있고 해경에서 사용한다면 (다이빙벨을) 주고 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대가를 지불하면 작업을 계속하겠느냐”고 묻자 “이제는 그렇다. (돈을) 벌 만큼은 안 되더라도 현실적이 돼야 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결국 바지선을 물렸다. 팽목항에 도착한 그는 실종자 가족을 의식한 듯 한동안 바지선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배 위에서 기자들과 만난 이 대표는 “실패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또 “조류가 있어도 운용 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하는 등 오락가락했다.

 -왜 철수하나.

 “(4월 30일의) 1차 시도에서 다이빙벨의 장점이 보여서 오늘 2차 시도에서 뭔가 나올 거라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공을 세웠을 때 분란, 사기 저하 일으키길 원하지 않았다. 성공적인 결과가 나왔다면 저는 각광을 받겠지만.”

 -(해경과 해군, 다른 민간 잠수사가 시신 인양을 해 세운) 공을 빼앗기 싫었단 말인가.

 “그거밖에 없다.”

 -거의 배 안에 진입하고서 왜 빠지나.

 “사업하는 사람으로서 실력을 입증받을 수 있는 기회였다. 앞으로 질타받고 사업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다.”

 -다시 도전할 건가.

 “다시 도전할 거면 이런 취급 받으면서, 가족들한테 야단맞고 할 리가 없다. 팽목항에서 완전히 철수한다.”

 -20시간 수색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처음부터 할 수 없었다. 자원봉사 잠수사가 많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잠수사들이 많이 내려가 교대를 하면 20시간 작업할 수 있는데 잠수사가 부족했다는 의미)

 - 가족들에게 할 말은.

 “죄송하다. 구한다고 와서 못 구하고 가서. 어떤 이유가 됐든 받아들이기 힘드실 것이다.”

 -해경에는.

 “마무리 잘해주시고 분란 일으켜 죄송하다. 곤란하게 한 것 많았다. 작업방법 비평하고 잘못한 것 밝힌 것 등.”

 이 대표는 이날 오후 늦게 팽목항을 빠져나갔다. 다이빙벨에 희망을 걸었던 실종자 가족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소식을 기다리던 이모(43)씨는 “그게(다이빙벨) 들어가면 구조가 엄청나게 빠를 것처럼 얘기해 기대를 걸었는데 이제는 민간 잠수사 말을 믿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1일 실종자 가족의 요청으로 다이빙벨을 바지선에 싣고 사고 해역에 나타났다가 해경이 반대해 돌아갔다. 당시 해경은 “다이빙벨에 대한 안전 확보가 되지 않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구조에 획기적 전기를 가져올 장비를 돌려보냈다”는 비난 여론이 일자 지난 24일 김석균 해경청장이 다이빙벨 투입을 결정했다.

 이튿날인 25일 이 대표는 다이빙벨을 바지선에 싣고 사고 해역에 도착했다. 하지만 바지선을 고정시키는 ‘앵커’가 이미 수색작업 중인 바지선 앵커와 얽혀 26일 팽목항으로 철수했다. 바지선은 29일 다시 사고 해역에 도착해 30일 1차 시도를 했으나 다이빙벨에 공기를 불어넣는 줄 등이 엉키는 바람에 끌어올려 수리했다. 그러곤 1일 2시간 작업 후 되돌아왔다.

 이 대표는 그간 “다이빙벨은 조류와 상관없이 최대 20시간까지 수색·구조작업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2010년 천안함 사건 때는 신학용 당시 민주당 의원의 요구로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천안함은 (폭침이 아니라) 좌초했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세월호 구조단은 이날 103명의 잠수사를 선체에 투입해 실종자 시신 9구를 수습했다. 이로써 희생자는 221명, 실종자는 81명이 됐다. 구조단은 세월호의 111개 격실(隔室·객실과 식당을 포함해 선체 내부의 밀폐된 공간) 중 희생자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64개 격실에 대한 1차 수색을 3일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진도=권철암·고석승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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