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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 변경으로 침몰했다면 … 선박 보험금 못 받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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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무리하게 구조 변경을 한 배가 침몰했다면 보험사가 선박에 대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S건설이 보유했던 석정36호(2601t급)는 2012년 12월 14일 침몰했다. 모래 말뚝을 박아 바다 밑 연약한 지반을 다지는 특수선박인 석정36호는 울산신항 북항 3공구 공사현장에서 작업 중이었다. 총 23명의 작업자가 승선한 가운데 강한 바람과 높은 파도가 몰아쳤다. 몇 차례 선체가 요동을 치자 배에 탑재됐던 대형 크레인이 부러지면서 선박 뒷부분 갑판을 덮쳤다. 순식간에 무게중심이 뒤로 쏠린 석정36호는 복원력을 잃고 바다에 매몰됐다. 12명이 숨진 참사였다.

 조사 결과 사고 원인은 무리한 구조 변경으로 밝혀졌다. 1984년 일본에서 건조된 이 선박은 S건설이 2007년에 수입했다. 회사 측은 작업속도를 빠르게 할 목적으로 낡은 작업선인데도 2012년 4월 구조를 변경했다. 전문가 안전진단도 없이 작업 설비들이 선박 위에 설치되면서 무게는 500t 이상 늘었다. 선박안전기술공단 부산지부는 “새로 설치된 장비의 무게와 배치 위치를 감안하면 무게중심이 현저히 상승해 복원력이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소견서를 작성했다. S건설이 사고 수습 후 매몰된 선체에 대한 보험금을 청구하자 동부화재는 소송을 냈다.

재판 과정에서 S건설은 높은 파도와 강한 바람 등 ‘해상 고유의 위험’에 의한 사고이므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1부(부장 오영준)는 동부화재해상보험이 S건설을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 당시 남해안 일대의 선박 사고는 석정36호가 유일했다”며 “선박에 대한 대대적 구조 변경으로 사고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선박을 보유한 회사들은 승객에 대한 보험과 별개로 침몰 사고에 대비해 선체에 대한 보험에 가입한다. 강제 조항은 아니지만 사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대부분 보험에 가입한다.

세월호의 선주사인 청해진해운 측도 총 113억원 구모의 선체 보험에 가입한 상태다. 김현 법무법인 세창 변호사는 “보험 계약을 맺더라도 선박회사가 무사히 항해할 수 있게 성능을 갖춰야 하는 ‘감항성 유지의무’를 어겼을 경우 보험금을 받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통상적으로는 선체에 이상이 있었다거나 복원성이 떨어진 상태에서 운항한 경우 과적을 하거나 자격 없는 사람이 선장 또는 선원으로 승선했을 때는 의무를 어겼다고 본다”며 “고장 난 자동차를 몰고 가다 사고 난 경우 보험금을 받지 못하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설명했다.

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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