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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마라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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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마라톤」은 원래 희랍의 「아테네」시 교외(동북방 32km)에 있는 한 한촌의 이름이다. 고대희랍사를 보면 이 마을은 「그리스」와 「페르샤」가 혈전을 벌인 고전장이기도 하다.
1896년 「아테네」에서 제1회 「올림픽」이 열릴 무렵 「파리」 「소르본」대학의 「브레아르」 교수는 IOC의 창설자인 「쿠베르탱」에게 색다른 제안을 했었다. 「마라톤」이라는 새로운 경기종목을 포함시키자는 것이다.
「브레아르」교수가 그 장거리경주의 명칭을 「마라톤」이라고 붙인 것은 바로 「마라톤」 고전장의 고사를 생각한 때문이다.
BC490년께 「페르샤」의 「다리우스」왕은 대군을 이끌고 「아테네」시로 쳐들어가고 있었다. 「그리스」는 이제 흥망의 순간을 가늠해야 하는 마지막 결전울 벌여야 했다. 그 전장이 바로 「아테네」 교외인 「마라톤」의 벌판이었다. 「아테네」군의 「밀티아데스」 장군은 한밤중에 기습작전을 폈다. 전승에 도취되어 있던 「페르샤」군은 단숨에 기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승리는 「아테네」군에.
「밀티아데스」 장군은 전령 「페이디미에스」로 하여금 그 소식을 「아테네」 시민들에게 알리도록 했다. 그는 28km의 거리를 무려 4시간이나 뛰어서 「아테네」시에 도착했다. 『우리는 이겼다』는 소리와 함께 이 전령은 지쳐서 쓰러져 버렸다.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쿠베르탱」은 이 고사를 받아 들여 기어이 「마라톤」을 「올림픽」의 종목으로 채택했다.
「마라톤」의 영웅으로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자토펙」, 「이디오피아」의 「아베베」 등을 꼽는다. 1952년의 「헬싱키·올림픽」에서의 금「메달」을 비롯해 1만m, 5천m 등에서도 「자토펙」은 우승했었다. 그는 유명한 일화를 갖고 있다. 군인생활을 하며 무거운 군화를 신고 눈이 덮인 벌판을 달리는 연습을 강행했었다. 우직할이만큼 의지에 강한 사람이었다.
「아베베」도 그 점에 있어서는 비슷하다. 1960년 「로마·올림픽」이후 「마라톤」의 황제가 되었던 그도 달리 비결이 없었다. 천후와 환경을 무릅쓰고 뛰고 또 뛰는 성직자의 고행과도 같은 훈련을 스스로 쌓았다.
「마라톤」만큼 인간의 의지를 저울질하는 경기도 없는 것 같다. 영국의 유명한 선수 「피터즈」 같은 사람은 연중 5백회에 걸쳐 4천4백38km를 달리는 연습을 했던 기록도 있다.
중앙일보·동양방송이 주최하는 경호역전「마라톤」도 그 규모에 있어서 사뭇 장쾌하다. 1백60여명의 선수가 1천3백리의 장정에 나섰다.
산하를 달리는 젊은이들의 장열한 「리듬」과 「스피드」는 새봄의 숨결 속에서 생명의 비상감마저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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