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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북빙양…유빙군의 모자이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탐험가들이 북극탐험의 기지로 삼았던 위치보다 훨씬 더 북쪽으로 올라오니 감회가 컸다. 목적지인 북빙양의 빙책이며 유빙 한계선으로 향하고 있는 갑판에서는 북국탐험에 관한 이야기들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독일이며 영국이며 미국·「노르웨이」등의 여행자들은 으례 자기나라 탐험가들이 이 북극을 탐험한 이야기를 하건만 동양인이라고는 하나뿐인 필자는 그들의 이야기를 비독할 수밖에 없었다.
이따금 크고 작은 여러 모양의 유빙들이 남쪽으로 향하여 떠내려오는 것을 보니 북빙양의 본고장에 가까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백야가 4개월이나 줄곧 계속되는 개설로서 안개가 많이 끼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아「레이다」는 연방 틀고 있지만 역시 사람의 감각으로 파악해야 하는지 감시자들을 여기저기 배치하여 둘레를 살피고 있다. 안개 속으로 들어가니 어떤 미궁 속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여객선은 안개 때문에 천천히 북쪽으로 오르고 있는데 북빙양의 전초기지라 할 유빙군이 뒤덮인 해상에서는 안개가 생기지 않는지 갑자기 눈앞이 보이는가 하더니 배 때문에 유빙들이 밀리며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대북 빙양에 왔노라」하는 신호로서 뱃고동의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소리는 아스라이 북쪽으로 펼쳐진 대 빙원으로까지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이 해역은 선박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북쪽인데 수많은 유빙들의 틈으로 보이는 북빙양의 짙푸른 바닷물 빛은 정말 아름다웠다. 이 넓디넓은 북빙양에 크고 작은 유수들이 가득 차 있는 것은 짙푸른 바탕에 흰 대리석으로 아로새겨진「모자이크」미술과도 같이 아름다왔다.
더구나 백야의 배 빛이 비스듬히 비치니 신비로운 빛깔을 띠었다. 추상화가「파울·콜레」나「몽드리안」은「모자이크」적인 그림을 많이 그렸지만 이 북빙양의 자연의 얼음「모자이크」를 본떴더라면 더욱 훌륭한 걸작을 낳지 않았을까. 불규칙한 오만가지 형태의 유빙들이 짙푸른 바다 위에「하머니」를 이루며 깔려 있는 것이야말로 북극 신이 만들어낸 거대한「모자이크 미술이었다. 이것을 볼 대상은 거의 없을 텐데 이런 지대에다 이렇듯「스케일」이 큰 우주화로서의「모자이크」미술을 만들고 있다는 것도 흥미 있었다.
여객선은 바로 이 자연의「모자이크」와 함께 빙책을 보여주기 위하여 여기까지 올라오는데 이 북빙양의 유빙이 떠 있는 한계선은「멕시코」난류가 이를 수 있는 최고도의 말단으로서 북빙양 한류가 부딪치는 곳이다.
더구나 북빙양과의 경계선에서는「멕시코」난류가 밀어 올린 유수 등이 2, 3m 높이로 떠받쳐져서 북빙양 해면에 도드라져 있어 흡사 자연의 얼음 보루 같았다.
유목으로 이루어진 이 얼음 보루는 중국의 만리장성보다 몇 배나 더 길다. 만리장성은 적의 침범을 막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갖은 고생을 겪어가면서 쌓은 것으로서 이렇다 할 효과는 보지 못했지만 이 자연의 만리장성은 오직 장식적인 것이라는 것은 좋은 대조다.
이 유빙장성의 약50m 가까이 까지 천천이 다가서는 동안 물결이 생겨 크고 작은 수많은 유수들이 부딪치기 때문에 높고 낮은 소리가 합쳐져서 마치「실로폰」같은 타악기의 연주와도 같다. 설령 배가 오지 않더라도 폭풍이라도 일어서 바다가 설레면 유빙들이 더 강하게 부딪쳐서 더 크게 소리를 낼 것이다.
여객선은 북빙양 유빙군의 남한계선을 따라 얼마동안 병행으로 향해 하다가 이 얼음의 장성을 뚫고 북진했다. 삽시간에 꽉찬 유빙으로 감싸이고 말았는데 이대로 얼어붙는다면 꼼짝 못하고 포위되고 말 것이다. 이 때가 밤10시40분인데 배 위에선「스피커」로 북위 80·30도, 동경10·25도로서 탐험대와 같은 특수한 장비 없이 올 수 있는 최북단의 위치라고 해설해 주었다.
필자는 먼저 북극점을 향하여 경건히 경례를 하고 고국 쪽으로 향하여 감사드리고…몸에 지니고 다니는 여행을 좋아하시던 작고한 부친의 사진을 꺼내 북빙양의 모습을 보여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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