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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숙정의 기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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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이달 말까지 3급 이상 공무원 4, 5백명을 주 대상으로 할 또 한차례의 대숙정을 단행하리라고 한다.
이미 정부는 지난 74년의 숙정작업으로 일거에 공무원 3백31명을 공직에서 몰아냈으며, 서정쇄신 작업이 본격화한 75년3월부터 76년말까지 무려 1만2백50명의 공무원을 파면, 또는 해임한바 있다.
그러니 지난 3년 동안에 비위에 관련돼 공직에서 쫓겨난 공무원만 하더라도 전체 50만2천7백2명의 2%를 넘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일괄적으로 4, 5백명의 3급 이상 공무원을 정리한다니 누구나 착잡한 느낌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서정쇄신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정부의 결의를 재확인하게 된 것은 마음 든든한 검이다. 그러나 시한을 정해 일정수의 공무원을 목표량 할당하듯 정리한다는 발상은 어딘가 불안한 느낌을 금하기 어렵다.
모르긴 몰라도 서정쇄신이 시작된 이래 구체적으로 비위가 적발된 공무원은 이미 그때그때 정리된 것으로 믿어왔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난 2년간에 1만2백50명의 공무원이 공직서 추방되었을 턱이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런 일상적인 비위공무원의 적발·추방과는 별도로 또 이렇게 대숙정작업을 할 까닭이 과연 무엇일까.
객관적으로 보기에는 이번의 숙정작업은 구체적으로 적발된 비운보다는 기업과의 유착· 국민에의 군림·사치·무능·무사안일 같은 포괄적 기준에 의하는 것 같다.
이렇게 포괄적인 기준을 적용하면 그 동안의 서정쇄신 작업이 빠뜨린 허술한 면을 보충하는 장점은 있겠으나, 억울한 회생이 곁들일 위험이 필연적으로 따르게 마련이다.
물론 우리는 구체적으로 비위가 적발되지 않았다 해서 주위에서 지탄을 받거나 무사 안일한 무능 공무원을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국민들 위에 군림하려는 전근대적 자세를 가진 공무원이나, 직무 수행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무능 공무원은 순태되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리의 기준과 그 기준의 구체적 적용만은 객관적으로 타당성을 지니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구체적인 비위사실 없이 4, 5백명의 공무원을, 그것도 주로 3급 이상의 중견 내지 고급공무원을 정리한다고 하면 필시 큰 불평과 공무원 사회의 동요가 따를 것이다. 이러한 불평과 동요를 최소로 억제하려면 그 작업이 신중하고 엄정하여 객관적 타당성을 지니지 않고선 불가능하다.
이러한 객관적 타당성이란 측면과 관련해 특히 숙정작업에 곁들여 정리대상에「고령자」를 포함시켰다는 것은 큰 우려를 자아낸다.
고령이기 때문에 사고가 전근대적이라거나, 직무수행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면 그것은 별 문제다. 하나 다른 문제가 없는데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 하나로 전리 대상이 된다면 이는 개인적으로 억울하고 부당한 정도를 넘어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라 아니할 수 없다.
국가공무원법 제74조는 직종과 직급에 따른 공무원들의 정년을 40세에서부터 6l세까지로 세분해 놓고있다. 이렇게 정년제를 둔 것은 성실하게 만 근무하면 국가는 그 때까지 그들의 경험을 기꺼이 활용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다. 그런데 어찌 개인의 능력이 연령에 반비례한다는 식의 위험한 사고가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적어도 이 고령자란 기준만은 당장 정리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전반적으로 숙정작업에 무리가 없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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