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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이상 조치' 한다더니 50발만 쏴 … 수상한 북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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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북한이 29일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두 곳에서 50여 발의 해안포 사격을 실시했다. 군 관계자는 “오늘 오후 2시부터 10여 분 동안 백령도와 연평도 인근 NLL 이북 지역의 월래도와 장재도 해상에서 북한이 각각 25발가량의 포사격을 실시했다”며 “NLL을 넘어온 포탄은 관측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군은 이날 포격은 북한 서남전선사령부가 주도했고, 76㎜(최대사거리 15㎞)와 130㎜(최대사거리 30㎞) 해안포(평사포)를 동원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북한이 29일 오후 2시쯤 서해 NLL 인근 해상에서 해안포 50여 발을 발사하는 사격훈련을 실시했다. 인천시 옹진군 소청도 대피소에 주민들이 대피해 있다. 주민대피령은 오후 3시30분에 해제됐다. [사진 옹진군청]

 북한은 이날 오전 8시10분쯤 우리 해군 2함대사령부 앞으로 전통문을 보내 사격 계획을 통보했다. 지난달 31일에 이어 두 번째다. 북한 국방위원회는 전날 “핵실험 이상의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는 성명을 발표, 도발을 예고했다.

 국방부는 북한이 공해상이 아닌 남쪽 방향으로 사격을 했다는 점에서 도발의 일환으로 간주하면서도 예상보다 저강도였다고 평가했다. 군 당국자는 “포탄이 NLL을 넘지 않았고 예상보다 소규모로 진행돼 자체훈련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동국대 고유환(북한학) 교수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 상황에서 ‘한 방’이나 4차 핵실험을 강행하기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며 “한·미 양측의 대응을 지켜본 뒤 다음 수순을 생각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이날 사격을 북한 내부의 정치 상황에 연결시키는 견해도 있다. 정보 당국은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지난 25일 동해안에서 사격훈련을 참관한 직후 “(서북도서를 담당하는) 서남전선사령부는 포 사격을 잘하는데 (동해안 부대는) 사격 훈련이 제대로 돼 있지 않았다”고 질책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말대로라면 군부가 김정은의 질책을 만회하기 위해 ‘포 사격을 잘한다’는 서남전선사령부가 나서 서북도서 지역에서 사격 실력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최근 권력 2인자인 최용해 총정치국장의 실각설이 나오고, 연일 극렬한 대남 비방이 이어지고 있는 것도 요동치는 평양 권력 내부의 변화와 연관된 것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사격훈련과 별도로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핵실험에는 시효가 없다”고 밝혀 핵실험을 당장 실시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외무성은 “올해 11월에 진행되는 미국 중간선거에서도 오바마는 그 값을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라고 주장, 핵실험 위협 국면을 장기화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북한은 2006년 미국 중간선거보다 한 달 앞선 10월에 1차 핵실험을 실시한 전례가 있다.

 북한의 해안포 사격이 시작됐다는 소식을 접한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 주민과 어민들 보호에 만전을 기해 달라”며 “북한이 사격한 포탄이 NLL 이남으로 떨어지면 원칙에 따라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백령도와 연평도에 주둔하고 있는 해병대를 비롯해 해군 함정과 공군 F-15K·KF-16 전투기 등 가용 전력이 대기상태에 들어갔으며 한때 북한 역시 미그기가 출동하면서 대치상황이 전개되기도 했다. 무인기는 관측되지 않았다.

 ◆"남한에 반정부 감정 일고 있다”=북한 관영 노동신문은 ‘드러난 무능력, 어처구니없는 대응’이라는 제목의 기명 논평에서 “(남한 내) 반정부 감정이 일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미 정상회담을 거론하며 박 대통령을 “외세에 명줄을 건 정치창녀”라는 막말도 쏟아냈다.

정용수·유성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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