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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재 허백련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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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의재 허백련옹이 조용히 죽음을 맞았다. 산수화의 세계에서 산지 80여년. 드디어 영원으로 향한 그 유현한 나그네길로 떠난 것이다.
의재의 그림을 보면 지극히 비사실적인 군데가 많다. 가령 강위에 떠있는 배보다 그 속의 항구가 더 크게 그려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항구를 배보다 크게 그려야 할 까닭이 있었다. 그는 뱃놀이하는 풍경을 그리자는 것이 아니라 장구의 가락을 그리려 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는 눈으로만 그리는 사실화가가 아니라 마음으로 그리는 「리얼리스트」였다.
그런 뜻에서 그는 누구보다도 사실성을 존중했다. 그는 산수를 그릴 때 아무데나 집을 그려 넣지는 않았다. 반드시 사람이 살수 있을만한 곳에 집을 그렸다.
그가 그린 산도 추상화되거나 양식화된 심산유곡은 아니었다. 늘 그가 보는 낮 익은 산들이다. 그의 그림은 그의 마음처럼 순박하고 부드럽다. 또 그는 잔재주를 부리려하지 않았다. 그는 문하생을 가르칠 때에도 3년의 수업을 마치기 전에는 산수화에 손대게 하지를 않았다. 산수화에서는 기에 앞서 심안이 더 중요하다는 그의 신념이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의 그림에는 어느 것이나 고졸의 구수한 맛이 감돈다.
그는 우리나라를 주름잡던 남종화의 큰 산맥 중에서도 가장 높은 명봉 과도 같다.
지금은 그보다도 더 곱게 산수를 그릴 수 있는 화가가 적지 않다. 그러나 그만큼 무잡· 무심· 무애의 경지를 터득한 화가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가, 그의 그림은 선화의 세계를 생각케 할 때가 많다.
의재의 그림 속에는 언제나 봇짐을 진 나그네가 그려져 있다. 그는 마을사람도 아니고, 심산에서 정진하는 도인도 아니다.
그는 마을을 스쳐 가는 바쁜 나그네 일뿐이다. 그는 언제나 허리를 구부리고 바쁜 걸음을 옮기며 있는 것이다. 하필이면 왜 의재는 봇짐을 진 나그네만을 즐겨 그렸을까. 삶이란 그저 이승을 스쳐 가는 나그네길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 였을까.
아니면 도저히 이를 수 없는 산 속 유곡에 닿겠다고 허둥대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그리려했던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그는 지극히도 자상한 미소를 띠면서 나그네를 그렸던 것이다.
『수묵은 순간과 영원성과를 대립시키지 않은 채 그 대화를 표명한다. 』 이렇게 「앙드레· 말로」가 말한 적이 있다.
이런 영감과 순간과의 대화를 그려내던 의재도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앉을 나그네길로 떠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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