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할 만한 박용숙씨의 역사추적「시리즈」동물 의인화 소설들,「인간」을 재음미 시켜|대담 이선영<문학평론가>|조해일<작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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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이 달에 발표된 소설가운데서는 특히 동물을 의인화해서 비유와 풍자의 수법을 보인 작품들이 눈에 띄더군요. 최상규씨의『초식』과 손장순씨의『고슴도치』(이상 문학사상), 정연희씨의『혼자 서 있는 나무』(한국문학)같은 작품들이 그것인데요. 소재선택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지만 그 나름대로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조=소재나「스타일」면에서는 전혀 다르지만 최인호씨의 중편『두레박을 올려라』(문학사상)도 동화 같은 느낌을 준다는 면에서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작품은 전체적인 분위기나「이미지」와 주인공의 행동에 논리성이 없다는 부분적 결함은 엿보이지만 최씨 특유의 재기와 깊이를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 또 다른 중편『개미탑』도 인간이 개미에 의해 침해당하는 상징적인 작품으로 호감이 갔습니다.
이=『개미탑』이 동물의 강함을 보여주었다면『초식』은 동물에 대한 인간의 강함을 보여주고 있어요. 한 마리의 매를 등장시켜 동물에 대한 인간의 우월감을 풍자한 이 작품은 「인간이 신 앞에선 멍텅구리밖에 안 되지만 동물 앞에선 신과 같은 기능을 발휘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꽃을 먹는 하얀 소』는 인간의 비정한 이익추구로 해서 참혹하게 희생돼 가는 소에 관한 이야기인데 매우「센티멘틀」한 느낌을 주었어요. 『고슴도치』에는 여러 동물들이 등장해서 약육강식의 인간사회의 윤리를 재치 있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조=저로서는 이 달에 가장 강한 인상을 주었던 작품이 윤흥길씨의『그것은 칼날』(뿌리깊은 나무)과 조세희씨의『육교 위에서』(세대)였습니다. 『그것은 칼날』은 눈과 마음이 순결한 한 거인을 등장시켜 우리들의 순결한 땅이 거짓과 악에 의해 빼앗기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요. 그 거인은 지능수준은 낮으나 감춰진 것을 잘 알아맞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지요. 도시인들이 땅을 사기 위해 시골에 왔을 때 가방 속에 든 돈을 칼이라고 말한 것은 돈과 칼의 개념을 같은 것으로 본 특이한 비유였습니다. 『육교 위에서』는 보통 단편보다 짧은 작품인데도 우리시대의 아픔을 강하게 응축시킨 충격적인 작품이지요.
이=박용숙씨의『알의 전설』「시리즈」도 충분히 생각 해 볼만한 작품인 것 같습니다. 이 말만 해도『유화부인』(현대문학), 『금개구리 왕』(문학사상)을 발표하고 있는데「올」이라는 현대로서는 다소 생소한「이미지」로써『삼국유사』에서의 비화를 재치 있게 표현하고 있어요. 이런 식으로 우리의 역사, 우리의 문화를 추적하고자 하는 노력도 평가해야겠지요.
조=이밖에도 한용환씨의「즐거운 생활과 행복한 죽음』(현대문학), 김주영씨의『서울구경』을 관심 깊게 보았습니다.
『즐거운 생활과…』는 알레고리」적인 수법을 강하게 나타낸 작품인데 한 교사가 학교생활과 가정생활의 틈바구니에서 겪는 고뇌를 실감 있게 나타내고 있어요. 이 작품은 우리가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지를 높은 차원에서가 아니라 우리자신의 느낌처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호감이 갔습니다. 『서울구경』은 시골의 어머니가 서울 사는 아들집을 찾아와서 무엇을 느끼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시대에 서울생활과 시골생활의 차이에 대해서 피차가 느끼는 실생활의 차이가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한천석씨의「개구리 타령』(한국문학)도 시골출신의 서울 변두리 인생을「리얼」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서울구경』과 같은 계열의 작품으로 볼 수 있겠군요. 여하튼 우리 소설을 읽으면서 늘 느끼는 일입니다만 소설이 우리생활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작가들이 한번쯤 생각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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