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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백설이 자자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서 갈곳 몰라 하노라」
고려 문신 이색(이색)의 시조. 조선조의 대조가 그처럼 벼슬자리에 부르려 했지만 끝내 절개를 놓치지 않았던 선비의 목소리는 어딘지 고고하고 맑기만 하다.
매화는 고령을 통해 동양에선 시선이나 묵객들의 칭송을 받아온 꽃이다. 또 중국은 한때 모란 대신에 매화를 국화로 삼은 일도 있었다. 모란의 농염보다는 매화의 냉염이 훨씬 선비답게 생각되었는지도 모른다.
한기가 가시지 않은. 이른봄의 꽃으로는 모란이 더 화려해 보인다. 그러나 동양인의 은근한 성미엔 매화의 향기에 더 마음을 준다. 사군자 가운데 매화를 으뜸으로 치는 것도 그런 은근함에의 매력 때문일 것이다.
중국 북송의 시인 소동파도 매화를 노래한 일이 있다.『때를 씻고 씻어 흰 살 더미가 보이네. 가슴에 맺힌 마음, 말끔히 사라졌네(매화)』. 그런 감상은 「매천부』를 읊은 정도부의 마음에도 이어지는 듯, 그는 매화를 두고 이렇게 노래했다. 『미녀와 같이 살갗이 희고 옥과 같은 얼굴에 몸도 풍만하네. 표연히 몸을 날려 은하수에 떠 있는 것 같고, 군선의 어깨위에 춤추는 것 같다-.』
매화는 일명 매실나무라고도 한다. 낙엽활엽·교목. 이른봄에 백 혹은 담홍색의 꽃을 피우며 핵과의 열매가 열린다. 전남북·경남·충북·경기·황해도에 분포되어 있다. 일본(구주)·대만·중국대륙의 남쪽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요즘은 매실주 등으로 우리의 일상에선 그 실용도를 더 치는 것 같다. 정원수로도 격조 높은 것은 물론이다.
『담 모퉁이에 두서너 매화가지 추위 속에 홀로 피어 있네 멀리 보면 눈은 아닌 듯, 그윽 한 향기가 마음을 적시네』 (장각수지매 능한독자한 요지부시설 위유암향내).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는 왕안석의 유명한 매화송이다. 「눈 속에 홀로 피는」 습성하며, 발딱하지 않는 그윽한 향기하며….
매화를 선비들이 더 없는 벗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런 은둔자적하는 생태 때문일 것도 같다.
요즘 신문지상에서 매화가 방실하게 피어있는 사진 한 장을 보며 문득 그런 매화에 일말의 향수 같은 것이 느껴진다. 속진이 분분한 가운데 제주도의 어디에 피었다는 그 화신은 사진만 보아도 청향에 젖는 듯. 소동파는 강호에서 그 매화의 암향을 뱃속에까지 채우고 살았다지만, 우리의 어설픈 일상은 다만 그 화신으로도 감회가 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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