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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세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새로운 기획「칼럼」 『함께 사는 세상』을 시작합니다. 지난해에 애독해 주신 『주말정담』을 대신하게 될 이 난은 여러 분야에 걸쳐 각계각층의 저자들이 참여하게 됩니다. 아울러 우리의 생활현장에서 우러나온 오늘을 살아가는 생활「모럴」등이 구김살 없이 펼쳐질 것입니다.【편집자 주】
어느 작가지망생이 보내준 수기 한편을 읽은 일이 있었다.
제목은 『너와 나의 다리』의 퍽 인상적인 표제였다. 그렇지만 나는 모두 1천5백장이 넘는 그 수기를 단 l백장도 넘기지 못하고 단념하고 말았다. 그 문학청년은 퍽 이나 섭섭하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귀담아 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직업상 나는 흔히 앞으로 무슨 얘기를 쓰겠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프러듀서」로 부터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는 하기야 쓰지도 달지도 않지만,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친지나 낯선 사람일 경우가 의외로 많아서 그럴 때면 은연중 긴장한다. 사실 다음에 무슨 얘기를 쓸 것인가에 대해 전혀 생각지도 않고 있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나는 나 자신의 경험담이야말로 다시없는 연속극의 소재라는 말을 하게 된다. 때로는 미지의 사람들로부터 생생한 체험들을 귀담아 들을 때도 없지 않다.
「논픽션」은 일반적으로 「픽션」보다는 그 농도가 훨씬 진하기 마련이며 그것은 인생의 현장에서 우러나오는, 후끈후끈한 체온이 느껴지는 얘기를 이기 때문에 자연 감동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는 번번이 실망해마지 않는 것이다. 막상 「드라마틱」한 경험담이란 것을 듣고 보면 도대체가 감동을 느낄 수가 없다.
예를 하나 들고 싶다.
『어느 해 여름이었어요.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시골에 내려간 나는 밤길을 걷다가 어떤 무뢰한에게 순결을 뺏겼어요. 그 뒤 내 인생에는 큰 변동이 왔지요.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긴 했어요. 하지만 배신당하고 결혼에 자신도 잃고 해서 결국 술집에 나가기로 했던 거예요. 이것이 말하자면 내 인생의 첫 출발이었어요. 그런데….』
아마 2백자도 되기 힘든 이런 글을 읽는 누구도 필경은 벌써 싫증을 느꼈을 것이다.
왜일까? 이 얘기에서 우리는 읽는 사람(혹은 듣고 보는 사람)에게 희망 주어야 할 혈맥의 상통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감동을 주지 못하니 공감을 얻을 수 없고, 공감 없는 「드라마」는 기름 없는 등잔이나 다름없다. 현대 「드라마」가 어때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잠시 덮어두고라도 「드라마」는 필연적으로 모든 사람의 공감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기 전에는 「드라마」로서의 성립 그 자체가 모호해진다. 그럼 앞서의 얘기에서 우리는 어째서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간단하다. 사건의 동기가 극히 드물며, 기이하기까지도 한 「우연」에 바탕을 두고있기 때문이다. 그 위에다 아무리 비극적 분위기를 더해도 사람들의 감동을 이끌어 내긴 힘들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묘해서 자기 사생활은 그저 그러면서도 「드라마」에서 만은 허잘 것 없는 인생관, 시덥지 않은 처세는 싫어한다. 이것은 TV「드라마」가 갖는 최소한의 상황일 것이다.
거기에다 문학성을 불어넣는다든지 교육적인 가치를 구현하는 문제 등은 2차적인 욕심이요 명제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감동은 별난데서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가진 선 의식, 이것이야말로 감동의 가장 원초적인 실마리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 의식이 바탕에 스며있지 않은「드라마」는 벌써 감동과도 거리가 멀다.
1천5백장이 넘는 얘기가 분명 기구한 운명의 기록임에는 틀림없으면서도 그러한 얘기를 갈구하는 나에게 백 분의 1의 공감도 주지 못하게 한 이유는 결국 그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방송극작가 조남사씨>

<필자약력>
▲1923년 충북 영동태생 ▲43년 일 전수대 중퇴 ▲45년 문예지 『백맥』의 편집동인 ▲ 『청실홍실』『동심초』등 작품다수 ▲현재 TBC-TV연속 「드라마」『맏며느리』집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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