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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산불] 복원 어떻게 해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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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1988년 5월, 미국 중서부에 있는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대형 산불이 났다. 불은 무려 넉 달 동안 꺼지지 않고 무려 150만 에이커를 태웠다. 미국 정부는 불이 이처럼 번지는데도 아무런 손을 쓰지 않았다. 과거 산불의 원인과 피해를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산불은 매우 중요한 자연현상이고 생태계에 도움이 된다'는 원칙을 세웠기 때문이다.

▶ 그 푸르던 솔숲이 … 산불 피해를 입은 낙산사 소나무 숲이 황폐해졌다. 숲이 복원되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린다.양양=김성룡 기자

미국이 이런 원칙을 지키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미국은 80년 직후에는 단 한 건의 산불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했다. 자연적인 이유로 발생한 산불까지도 필사적으로 잡으려 했다. 그러나 그런 정책은 뜻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했다. 숲이 노화하면서 나무가 죽고, 풀.잔가지.나무껍질.나뭇잎들이 쌓여갔다. 산불을 인위적으로 억제한 것이 불이 나기 좋은 환경을 만들었다. 건조한 날씨는 대형 산불로 이어졌다. 이른바'옐로스톤 효과'다.

◆외국의 산불 대처=미국의 경우 국립공원 등 자연림에 산불이 발생하면 그냥 타도록 내버려 둔다. 또 꺼진 뒤에도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자연에 맡겨둔다. 초원에서는 불을 지르기도 한다. 초원에 나무가 자라면 초원이 사라지기 때문에 불을 질러 초원을 유지하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우리와 비슷하다. 특히 히로시마 지역은 우리 동해안 산지처럼 불이 자주 발생한다. 불이 난 후에는 방치하는 경우도 있고 조림을 하기도 한다. 풀씨를 뿌려 산사태를 방지하는 공사를 한다.

러시아의 경우 드넓은 초원에 난 산불은 아예 끌 생각도 못한다. 국토가 워낙 넓고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옐로스톤이나 미국의 국립공원 산불 관리방식을 국내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국립산림과학원 임지보존과 정용호 박사는 "한국 산림의 경우 경사가 심하고 집중 호우에 취약해 그냥 내버려둘 수 없는 곳이 많다"고 강조한다.

◆자연 복원력 얼마나 강한가=강릉대 이규송 교수는 "인위적으로 나무를 심는 것보다 자연 복원이 훨씬 빠르다"고 말했다. 그는 "인공적으로 조림할 경우 특수한 수종을 심게 되는데 비해 자연 복원은 모든 식물이 다 자랄 수 있게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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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전문가들도 "산불 피해지역에서는 토양 안정화가 가장 중요한데, 대규모 조림에 나서고 많은 사람이 밟고 다닐 경우 생태계가 교란돼 복원이 늦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숲이 복원되는 속도는 전적으로 숲을 구성하는 나무의 종류에 달려 있다. 불이 난 뒤 다시 형성되는 숲에서는 이전에 자랐던 나무 종류가 활발하게 자란다. 우리나라 산 중 도심 주변 산에는 아카시아 나무가 많다. 자연림이 있던 곳에서는 참나무.졸참나무.굴참나무 등이 활발하게 자란다. 이런 나무들은 생장 속도가 빨라 그만큼 빠르게 숲이 복원된다. 소나무가 많이 있기는 하지만 참나무와 같은 활엽수보다 생장 속도가 늦어 다시 숲이 생성될 때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70~80년대에는 산불 지역에서 타고 남은 나무를 제거하고 송이버섯을 채취하기 위해 소나무를 심었는데, 이는 숲은 복원 측면에서는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서울대 윤여창 교수는 "인공 조림과 자연 복원 가운데 어느 쪽이 잘되는지는 장기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생태계 변화를 5년 정도 조사해 결론 내리기는 이르다"고 지적했다.

한편 환경부는 2000년 산불 발생 당시 전체 피해 지역의 80%가 자연 복원력을 갖추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특별취재팀=정책사회부 강찬수 환경전문 기자, 사건사회부 이찬호.홍창업 기자, 사진부 김성룡 기자 <envirepo@joongang.co.kr>

◆동행 및 도움 주신 분=국립산림과학원 정용호 박사, 강릉대 이규송 교수, 녹색연합 백두대간보전팀 정용미 팀장, 조회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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