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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 허둥지둥 빈손 출동, 망치·줄사다리만 있었어도 …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세월호 침몰 사고가 난 지 27일로 12일째. 현장에서는 아직도 생존자 수색 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사고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조사도 속도를 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전면적 개각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이런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할 대책 마련이다.
단계별로 지적된 문제점을 간추려 본다.

어이없이 흘려 보낸 골든 타임 … 선체 밖 인명 구하기 급급

[초 동] 지난 16일 세월호 선체가 기울기 시작한 시간은 오전 8시48분. 하지만 사고 해역을 관할하는 진도VTS가 신고를 정식 접수한 것은 18분이나 흐른 9시6분이었다. 사고 신고가 119와 제주VTS, 해경 상황실 등을 거치면서 아까운 시간만 허비했기 때문이다.
대형 사고는 초기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에서 잃어버린 ‘골든 타임’(재난 때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유효시간)은 300명이 넘는 사망·실종자를 낸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골든 타임을 허비한 데는 세월호와 진도VTS가 기본적인 관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도 한몫했다. 규정상 여객선은 특정 해역에 들어설 경우 관할 VTS에 보고한 뒤 관제를 받도록 돼 있다. 하지만 합동수사본부가 공개한 진도VTS 교신 녹취록에는 세월호가 진도 해역 진입을 보고했다는 내용은 없었다.
당시 세월호는 목적지 관할인 제주VTS에 교신 채널을 맞춰 두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승무원의 첫 신고도 제주VTS로 접수됐고 진도VTS는 신고가 접수될 때까지 세월호가 담당 해역에 들어왔는지, 이상 징후가 있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세월호가 진입 보고 의무를 성실히 이행했거나 진도VTS가 관제를 제대로 했더라면 18분이나 허비하진 않았을 것이란 지적이다.
사고 후 출동한 해경의 어설픈 대응도 시급히 개선해야 할 문제로 지적된다. 해경 소속 선박 30여 척이 현장에 도착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배가 기울어진 상황에서 배 안의 승객은 자력으로 탈출하기가 어려웠다. 배 안으로 들어가 구출하거나 망치나 해머를 동원해 창문을 깨고 줄사다리만 내렸어도 훨씬 많은 탑승자를 구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맨손으로 출동한 해경은 배 밖으로 나온 사람을 구출하는 데 급급했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도 23일 “당시 사고 해역에 도착한 배에는 특수 구조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일반 해경 직원이 타고 있었고, 창문을 깰 수 있는 장비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고 밝혔다.

생존자 있었을 초기에 대형 헬기 집중 투입했더라면

[구 조] 해양 재난사고에서 가장 필요한 장비는 대형 헬기다. 1분 1초가 급박한 상황에서 대형 헬기는 가장 빨리 현장에 도착할 뿐 아니라 가능한 한 많은 생존자를 구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민간 해양구조단체가 보유한 헬기만 292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해경은 소형 헬기만 보유하고 있어 위급한 상황에 도움이 안 됐다. 더욱이 사고 직후 출동한 소방 헬기는 해경과 손발이 안 맞아 대기만 하다 돌아갔다.
당국은 각종 첨단 장비를 총동원했다고 하지만 구조작업은 성과가 없다. 장비들이 적재적소에 체계적으로 투입되지 않은 데다 이들 장비가 구조보다 탐색·인양을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장비는 해상 크레인이었다. 해경은 사고가 난 16일 국내 조선 3사 등에 해상 크레인 지원을 긴급 요청했다. 당초 크레인이 도착하기만 하면 신속한 구조작업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에서 보낸 다섯 척의 크레인은 아직 대기 상태다. 선박을 크레인으로 들어 올리면 선내 생존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에어포켓(객실 내 공기층)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선박을 해상에서 건조할 때 사용하는 일종의 반잠수식 바지선인 ‘플로팅 도크’도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대형 크레인이 뒤집힌 세월호를 바로 세워 끌어올린 뒤 플로팅 도크에 얹어 줘야 해 작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해상 크레인이나 플로팅 도크는 해난 구조장비가 아니라 선박 건조장비여서 선체 인양이 아닌 인명구조 단계에서는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첨단 구조장비라며 투입한 ‘원격조종 무인탐색기(ROV)’와 해저탐사용 로봇 ‘크랩스터’도 조류가 거센 사고 지점에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현장 지휘자들의 지식 부족도 문제다. 한 민간 잠수사는 “해경은 잠수장비로 스쿠버밖에 갖추지 않고 있다”며 “제대로 된 장비가 없으니까 사고 수습에 나선 지휘자가 허둥대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10여 개 대책본부 난립 … 장관이 장관 지휘하는 구조

[지 휘] 세월호 참사 초기 정부의 갈팡질팡 행보는 지금의 재난구조 체계상 이미 예견돼 있었다. 바다를 가장 잘 안다는 해경과 해양수산부는 막상 사고가 나자 우왕좌왕했고, 재난관리를 총괄하는 안전행정부는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을 상실한 채 허둥지둥댔다.
사고 당일 오전 안행부에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해수부에는 중앙사고수습본부가 꾸려졌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르면 대규모 재난이 발생하면 안행부 장관이 범정부 차원에서 총괄지휘를 맡도록 돼 있다. 문제는 한 장관이 동일한 지위에 있는 다른 장관을 지휘하는 구조다 보니 지시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지역대책본부의 경우 양쪽 모두의 지휘를 받도록 돼 있어 부처 간 혼선만 가중시키고 있다.
그런 가운데 보건복지부는 사고대책수습본부를, 해경은 인천과 목포에 지방사고수습본부를 추가로 설치하는 등 10여 개의 대책본부가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면서 일관된 현장 지휘체계는 실종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사망자 집계가 수시로 바뀌는 결과로 나타났다. 여기에 해양관제 체제가 해양항만청과 해경으로 이원화된 상태에서 통합관리할 주체가 없는 구조도 신속한 대처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혼선이 계속되자 정부는 사고 사흘째인 18일에야 정홍원 국무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범정부사고대책본부를 꾸렸다. 하지만 이 또한 안행부에 총괄 조정 기능을 부여한 법 체계를 정부 스스로 부정한 꼴이 됐다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에선 3400여 개나 되는 정부의 재난 관리 매뉴얼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전문성 없는 직원들이 순환보직으로 재난관리 업무를 맡다 보니 실제 상황에서의 대처 능력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현실성이 없는 매뉴얼을 수시로 점검·보완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잖다. 미국은 1994년 이후 3년마다 실전을 방불케 하는 전국 단위의 대응훈련을 통해 개선점을 찾은 뒤 매뉴얼에 반영하고 있다.

출항·적재 규정은 장식 … 선체 개조 감독도 무용지물

[규 정] 세월호 운항관리규정 중 ‘출항 또는 운항 정지의 조건’에는 짙은 안개 등으로 시계가 악화된 경우(시정 1㎞ 이내) 안전한 곳에 가정박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세월호는 지난 15일 오후 9시 짙은 안개 속에서도 무리하게 출항을 강행했다. 당시 짙은 안개로 다른 선박들은 부둣가에 정박된 상태였지만 세월호는 자신들이 정해 놓은 ‘운항관리규정’을 무시한 채 출항했다.
화물과 차량 적재 기준도 지켜지지 않았다. ‘차량 화물 적재 방법’에는 차량 적재 기준으로 승용차 88대, 화물차(대형 트럭) 60대, 컨테이너(10피트) 247개만 실을 수 있게 돼 있다. 하지만 세월호는 승용차와 대형 트레일러, 굴착기 등 180대를 포함해 화물 3608t을 실었다. 규정상 987t을 실어야 했지만 4배 가까이 더 적재한 것이다. 해경은 심사를 허술하게 했다. 운항관리규정을 승인하면서 적재 중량 등을 확인하지 않고 도장만 찍어 줬다.
화물 고박 상태도 지켜지지 않았다. 규정에는 선장은 일반(차량) 화물의 적재 상태를 확인하고 선박의 안전운항 확보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한 뒤 출항에 임해야 한다. 하지만 세월호 선장은 마지막 짐을 실은 지 3분 만에 출항했다. 세월호가 기울 때 화물까지 한쪽으로 쏠리면서 복원력을 잃게 해 침몰하게 만들었다는 주장이 제기된 이유다.
해수부는 선박 개조를 허가하는 규정을 허술하게 만들어 놓는 탓에 세월호의 무리한 선체 증설을 전혀 감독하지 못했다. 선박안전법 제15조 2항은 선박을 개조하면서 길이·너비·깊이·용도 변경 등 네 가지가 달라질 경우 해수부 장관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중 한 가지를 바꾸려면 설계도면을 지방해양항만청장에게 제출해 승인받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이 네 가지를 제외한 다른 구조 변경은 해수부 허가 없이 민간단체인 한국선급의 검사만 통과하는 것으로 가능하다. 해수부의 허술한 규정이 감독 사각지대를 낳고 사고 위험을 키운 셈이다.

박신홍·박태희 기자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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