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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고객 주머니를 불려준다고? 월가의 뻔뻔한 거짓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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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내가 골드만삭스를
떠난 이유
그레그 스미스 지음
이새누리 옮김
문학동네, 386쪽
1만8000원

물신(物神)은 올림포스에 머물지 않는다. 자신을 숭배하고 섬기는 사원들이 죽 늘어선 곳, 뉴욕의 ‘월 스트리트’를 거닌다. 거리마다, 마천루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탐욕의 통성기도를 들으면서. 골드만삭스는 이들 사원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힌다. 이름부터 황금인간(Goldman)이다. 제사장 급인 CEO가 간혹 속세로 내려오면, 미국의 재무장관을 맡는다. 전세계의 돈줄을 쥐락펴락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 탐욕의 사원에 사제가 된다. 돈은 모든 이를 행복하게 해주는 은총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물신주의 전도에 앞장서면서 사제간 서열의 사다리를 하나씩 올라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회의에 빠진다. 소위 ‘닷컴 버블’을 거쳐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빚어진 2007년 금융위기를 맞으면서다. 이때부터 사원이 신도보다 자신들의 주머니만 챙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신도들 주머니가 불룩해지면 사원 덕, 얄팍해지면 재수 탓이다. 결국 노름판 ‘하우스’와 무엇이 다른가. 그저 재산 좀 불려보겠다는 선량한(?) 신도들을 돈 보따리 갖다 바치는 멍청이로 취급한다.

 저자는 결국 호루라기를 분다. 뉴욕타임스에 자신이 겪고 보고 들은 내용을 싣는다. 금융회사의 탐욕과 배신과 무원칙, 그 희생물이 될 수밖에 없는 고객의 입장을 폭로한다. 대형 금융회사들이 어떻게 고객을 이용하고, 농락하고, 기만하는지 낱낱이 까발린 것이다. 내부고발자가 으레 그렇듯이 이쪽에선 영웅, 저쪽에서는 ‘쥐*끼’가 된다. 골드만삭스는 저자가 연봉(50만달러)에 불만을 품어 실제를 과장했다고 주장한다. 저자도 자칫 소송을 우려했는지 책에서 구체적인 비리나 적나라한 수법은 짐짓 냄새만 풍긴다. 어쩌면 그의 부사장 직위(골드만삭스에는 부사장만 1만2000명이다)로는 좀더 내밀한 부분까지 알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요즘 젊은 ‘돈의 노예’들이 우러러보는 골드만삭스에 인턴을 거쳐 애널리스트가 되고,부사장까지 오르는 과정이 매우 상세하게 그려진다. 23세부터 10년간 치열한 내부 경쟁, 아이비리그 학벌주의, 직장 상사를 향한 비굴함, 라스베이거스에서의 ‘돈질’까지 대부분 실명(實名)으로 소개한다. 비록 뉴욕에서 런던으로 ‘추방’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남아공 출신 유대인으로서 스탠퍼드대학에 유학하고 승진도 빨랐던 유능한 펀드매니저임을 은근히 자랑하면서.

 그런데 ‘탐욕의 전당(錢堂)’을 박차고 나온 저자의 행로는 어떻게 될까. 거액 연봉 대신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지만, 구깃구깃한 돈에서 청탁(淸濁)을 가리기가 어디 쉬운가.

금융사 이기는 고객 10계명

(1) 직원을 자른 금융회사의 칼은 고객의 등을 향한다. (2) 잃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얻는 사람(회사)이 있다. (3) 금융회사 믿지 마라. 자신의 자산은 스스로 지켜라. (4) 투자해야 할 시점은 길거리에 피가 흥건할 때이다. (5) 투자회사에서의 성공 열쇠는 지식보다 판단력이다. (6) 금융기관은 고객들의 패를 보고 있다(비대칭 정보). (7) 월가는 고객의 공포심과 탐욕을 적절히 요리한다. (8) 금융회사는 고객이 아니라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9) 복잡한 금융상품은 흉물덩어리다. 전문가도 모른다. (10) 내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누구나 아는 게 소문이다.

박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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