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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부지런한 「아이슬란드」인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전쟁의 위협 속에 사는 현대에서 전쟁의 불안이나 공포란 아랑곳없이 오직 자연인 바다와 화산하고만 싸우고 있는 「하이마이에」섬의 모습이 뜻하지 않은 깊은 감명을 주었다. 여기서 사귄 사람들은 이별을 아쉬워했다. 「런치」(작은 배)로 외항에 머물러 있는 본선인 여객선으로 돌아올 때 바닷가 절벽에 보금자리를 꾸미고 사는 해조들이 수없이 날면서 마치 이별의 「행거치프」를 흔드는 것 같이 그 하얀 날개를 움직였다.
이날은 몹시도 흐려 짙은 구름이 바다를 온통 뒤덮고 있었다. 저녁 7시에 다음 기항지인 「아이슬란드」 본도의 서울 「레이캬비크」를 향하여 북서쪽으로 떠났다.
바다는 잔잔했으나 북 대서양 특유의 기름처럼 미끈한 큰 물결이 매우 느린 움직임으로 꿈틀거리는 것은 멋있었다.
이 섬 주변에는 이 특유의 물결 못지 않게 독특한 해조들이 날고 있었다. 날개가 유독 빈약하고 짧은데다가 부리가 긴 새인데 처음 날아 보는 아기 새처럼 서툴러 보이는 이 해조들이 여객선을 보고 비켜 달아나는 것이 매우 사랑스러워 보였다. 혹 날개가 「펭귄」처럼 퇴화해 가는 조류가 아닌가도 생각되는데 갈매기처럼 높이 훨훨 날지 않고 수평선처럼 해면에 스칠 듯이 날기 때문에 흡사 물결을 타고 달리는 것과 같았다. 차라리 「펭귄」처럼 날개가 퇴화하여 물 속에 살 수 있게 진화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 그런 이상한 해조였다. 혹 단익류의 해조 「에투피리카」가 아닌지도 모를 일이었다.
밤새껏 달린 여객선은 새벽에 「아이슬란드」에 이르렀는데 거무칙칙한 현무암의 낭떠러지가 눈앞을 가로막는가 하더니 평탄한 지형에 펼쳐진 서울 「레이캬비크」에 닿았다. 항구도시지만 이를 때없이 깨끗해 보였는데 인상적인 것은 약1천년 전에는 「바이킹」이 와서 살았던 만큼 「바이킹」의 조각도 시내에 있어서 회고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것이었다.
이 「레이캬비크」는 내가 1970년 늦가을에 왔던 곳이어서 낯설지는 않았으나 그새 몰라보게 발전해 있었다. 이 나라 인구의 5분의 2에 해당하는 8만2천만명이 이 서울에 살고 있는데 국민소득은 4천3백13「달러」로서 「유럽」에서는 「스웨덴」 서독 「덴마크」 「룩셈부르크」 다음 가는 다섯번째의 고소득 국가다.
이 나라가 번영하고 있는 것은 「아이슬란드」주변의 바다가 손꼽히는 어장으로서 어업에 딸린 부대 가공업의 발달로 돈을 많이 벌어들이기 때문이지만 이 나라 국민이 모두 부지런하지 않고서는 이렇듯 부강한 나라를 이룩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나라의 발전상을 쓴 책을 보니까 1801년에는 인구가 불과 3백7명이던 것이 l880년에는 약2천6백명, 1928년에는 약 2만8천6백명, 오늘날은 20만이 넘는 인구가 된 것이다.
이 서울은 특히 난방시설이 잘 되어 있는데 단 연료를 쓰지 않는 것이 매우 유리한 점이다. 이 섬은 빙하와 화산이라는 양극을 지닌 묘한 곳이어서 땅 거죽은 빙하로 덮여 있지만 땅속에서는 끓는 물이 솟아 나오기 때문에 이 자연의 온수를 「스팀」으로 이용하여 쓰고 있는 것이다. 「레이캬비크」교외에도 무진장으로 나오는 큰 온천이 있어서 여기서 나오는 물을 8∼9㎞에 걸친 큰 「콘크리트·파이프」로 시내로 끌어들이는데 시당국에서는 무료로 뜨거운 물을 공급해 주므로 시민들은 모두가 겨울에도 연료 걱정 없이 훈훈한 방에서 단란하게 살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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