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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 기자는 고은맘] 아줌마 9단 앞에서 자리를 놓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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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 꼭 쥔 고은양. 세월호 구조 활동에 참여했던 한 잠수부는 “물속에서 자궁 속 태아처럼 꼭 쥔 손을 펴 줄 때 얼마나 눈물이 흐르던지…”라고 말했단다. 세상보다 엄마 뱃속에 오래 있었던 고은양은 주먹을 꼭 쥐곤 한다.

임신을 하거나 아기가 있으면 탈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가벼운(이라고 쓰지만 결코 가볍지는 않은 ㅠ) 한 몸만 이끌고 움직이던 시절에는 스마트폰 지도만 있으면 조금만 멀어도 찾아가는데 걱정이 없었습니다. 두 발로 걷고, 9개나 되는 노선도 가뿐히 갈아타고,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서 있기도 두려울(?) 게 없었으니까요.

고은양이 뱃속에 있을 때나 제 옆에 있으니 얘기가 다릅니다.

임신 중에도 그랬습니다. 임신 중독증이 의심될 정도로 20kg 넘게 불어난 몸을 이끌고 움직이려니,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유체이탈 상황이 자주 벌어졌습니다. 기본 교통수단은 지하철에서 택시로 바뀌었죠.

카시트에 앉으면 무념무상해 지는 고은양. 다행히 카시트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아침에는 상태가 좀 낫다고 지하철을 타고 출근했습니다. 저녁 퇴근길에 발도 붓고 몸도 무거워져서 지하철이나 버스는 엄두 내기 힘들지만 아침은 해볼만 했습니다. 운동도 되고 돈도 아끼겠다는 마음에서요. 처음에는 내심 ‘배가 부른 나에게 누군가 자리를 양보하겠지…’ 싶었습니다. 언감생심-. 출근길 러시아워에서 익명의 선의를 기대하는 건 저만의 순진한 생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배가 덜 불러 임신부처럼 보이지 않나 보다, 며 초긍정 모드로 해석했습니다. 실제로 노약자 및 임산부석에 앉으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째려보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배가 불러와 남산은 저리가라 해도 자리는 쉬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노약자’분들이 그러면 이해하는데 20대로 보이는 건장한 남자애가 이어폰 끼고 핸드폰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하며 둥근 내 배를 보고도 꿋꿋이 앉아 있을 때는, 그 아이의 초지일관 태도에 감탄(?)할 뿐이었습니다.

고은양이 나오고 몸이 좀 가벼워지면 나아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상황은 비슷합니다.

한 달 전쯤, 고은양을 유모차에 태우고 외출했습니다. 약속 장소가 지하철과 연결된 곳이라 저도 용기를 내고 유모차를 끌고 갔죠.

뒤집기가 제일 쉬웠어요. 이젠 눕혀 놓으면 자동으로 뒤집는다.

유모차를 끌고 가니 이전에 제가 이용하던 루트와는 전혀 다른 루트를 찾아야 했습니다. 엘리베이터 찾아 3만리. 뭐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이전에는 종종 눈에 띄던 엘리베이터 안내판이 당췌 보이지 않았습니다. 환승역이라 유난히 넓은 역사를 헤맨 끝에야 겨우 발견한 엘리베이터. 어찌나 반갑던지…. 헤맨 덕분에 일찍 나온다고 나왔는데도 약속 시간에 20분은 늦었습니다(돌아오는 길에는 아까 외워둔 루트를 그대로 따라가면 되겠다 싶었는데, 그랬더니 반대편 방향 지하철 승강장으로 내려왔습니다 ㅠ).

이후엔 웬만하면 고은양을 어깨띠로 안고 다닙니다. 고은양이 빤히 쳐다보는데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제가 어려보여서 그런다고 좋게 이해하려고 합니다. 양보가 의무는 아니니... 고은양을 매고 외출했다 집에 오면 허리가 말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허리 힘을 더 키워야겠습니다.

하도 실망을 많이 한 터라 이제는 그려러니 합니다.

그래도 엊그제 백화점 문센(문화센터) 다녀오는 길에 있었던 일은 쪼~끔 기억에 남습니다.

복잡한 버스 승강장. 20여명의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더 많았는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타려는 버스가 들어오자 그 사람들이 모두 그 버스로 돌진했습니다. 버스는 제가 서 있는 곳 앞에서 정차했습니다. 위치상 제일 먼저 버스에 올라야했지만 보도에서 차도까지 꾸물대는 사이,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돌진한 분들이 먼저 버스 문 앞에 줄을 서더군요. 버스 문이 열리고... 그때 뒤쪽에서 고은양을 안고 있는 저를 밀치고 누군가 앞으로 달려나갔습니다. 고은양이 놀래지 않았나 토탁이며 그분 뒤통수를 째려 봤습니다.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의 아웃도어 점퍼를 입은 여자분, 아줌마였습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누구보다 버스에 제일 먼저 올라탄, 최후의 위너는 그 아줌마였습니다(느즈막히 올라탔지만 저도 ‘선의의 배려’로 다행히 앉았습니다^^).

ps. 지하철 노약자석에 고은양을 안고 앉아있는데 정말 ‘할아버지’가 탔습니다. 옆에 앉은 50대로 보이는, 정말 건강해 보이는 여성분은 일어날 생각을 않더군요. 할아버지 눈길이 따가워 제가 일어났습니다. 이런 분들은 할머니일까요, 아줌마일까요?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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