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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 폭풍의 눈 OPEC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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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오스트리아」 「빈」의 중심가. 교회들과 함께 촘촘이 들어선 건물 사이에 「캐나다」국기가 팔랑거리는 8층 건물이 있다. 얼핏보아 초라하기 만한 이 건물에서 흘러나오는 풍설이 73년의 「에너지」 파동 이후 1년에 두 차례씩은 반드시 세계적인 각광을 받는다. 바로 이 건물 안에 「캐나다」대사관·「덱사크」 석유회사·일본 상사들과 함께 OPEC(석유수출국기구) 본부가 세 들어 있기 때문이다.

<초라한 임대 사무실>
이 건물의 2, 3층 중 어느 한방에서 재채기 소리가 나면 선진국 경제에는 감기 경보가, 개발 도상국 경제에는 몸살 경보가 내려진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OPEC의 석유 가격 결정에 따라 세계 경제의 진폭이 크게 요동, 경기의 호·불황이 좌우된다는 이야기다.
해마다 두 차례씩 열리게 되어 있는 OPEC총회(각료회의)를 앞두고 산하 기관인 경제위원회에서 작성하는 보고서·건의서는 그래서 이목을 끈다. 그러나 그 내용이 공개되는 일이 없으므로 풍설이나마 큰 「뉴스」거리가 된다.

<풍설만 나와도 빅 뉴스>
OPEC가 이처럼 「뉴스」의 초점이 되는 것은 세계 석유 매장량의 68%, 석유 생산량의 55%를 차지하고 비공산 세계에 대한 석유 수출량의 85%를 지배하고 있는데 있다. 이는 미국 등 몇몇 나라를 제의한 비공산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가 「에너지」공급의 대부분을 OPEC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는 사실을 뜻한다.

<1년에 두 차례 총회>
73년의 「에너지」위기 이후 OPEC는 석유 가격 인상의 대명사처럼 되어 왔다. OPEC총회 자체가 늘 인상을 위한 회의였던 탓이다.
그러나 OPEC 내부에서는 그 인상폭과 시기를 두고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이 의견 차이 중 대폭 인상을 주장하는 측을 강경파, 약간 인상을 주장하는 측을 온건파라고 흔히 부른다. 엄밀히 말해서 이러한 분류는 정확하지 않다. 가격 인상을 둘러싼 대립의 요인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즉 석유 매장량의 차이, 회사·경제의 발전 단계, 경제·사회주의 등 정치체제의 차이, 인구·면적의 차이, 식민지 시대의 구 종주국과의 관계, 무기 구입선, 「사우디아라비아」 「이란」의 「페르샤」만 패권 다툼 등이 복합적으로 석유 가격 인상을 둘러싸고 작용한다.
이를테면 「사우디아라비아」처럼 75년 분의 가채 매장량을 가진 나라는 생산량을 늘려 낮은 가격으로라도 석유 수입을 증가시키겠다는 정책을 취한다. 원자력 같은 경쟁 「에너지」원이 개발되어 석유의 가치와 경쟁력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반면 「베네쉘라」처럼 가채 매장량이 15년분 밖에 없는 나라는 「배럴」당 석유 수입의 증가를 위한 생산 제한을 주장한다. 그런가 하면 자원 보호의 입장에서 생산 제한을 주장하는 나라도 있다. 「리비아」 「쿠웨이트」 같은 나라가 이에 속한다. 이런 나라는 원유 가격의 인상을 주장한다.
그런가 하면 「이란」 「인도네시아」 「이라크」 「알제리」 등 인구가 많고 어느 정도 공업화의 기반을 가진 국가는 사회·경제 개발 속도를 서두르기 위한 석유 수입의 증대가 필요하다. 그러나 「아부다비」 「카타르」 등 인구도 적고 토후국으로 사회 개발이 뒤진 나라에 있어 석유 수입 증가의 필요성은 다르다.
또 군원·경원을 미끼로 석유 이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미국의 의사도 무시할 수 없다. 「아랍」 급진국들은 석유 가격 인상이 미국 정부의 장기 전략과 석유 자본의 야합으로 농간되고 있다고 주장, 73년의 「에너지」 파동도 미국의 계략이었으며 당시 덕을 본 나라는「오일·달러」의 대부분을 결과적으로 흡수한 미국뿐이었다고 말할 정도다.

<배후에는 7자매가>
이러한 OPEC각국의 가격 인상을 둘러싼 대립은 그 결정을 다수결로 확정짓는다면 늘 대폭 인상파 쪽이 우세할 것이다. 그러나 그 결의 방식이 전원 합의제로 되어 있어 어느 한 나라라도 거부하면 결정이 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각 구성국에 거부권이 주어져 있는 셈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OPEC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국제 원유 가격을 좌우할 수 있는 생산 능력을 배경으로 거부권을 쥐고 있는 탓이다.
OPEC 성립 이전까지 세계의 석유, 시장은 이른바 「세븐·시스터즈」로 통칭되는 미·영계의 7대 석유 회사 등 국제 석유 자본에 의해 지배됐었다. 이들 석유 자본들은 생산·판매·수송 수단을 장악하고 일방적으로 가격을 결정하여 산유국에 통고, 이에 따른 이권료만 지불했다.
국제 석유 자본의 지배 능력이 얼마나 강력했던가는 55년부터 69년까지 원유 가격이 「배럴」(1백59ℓ)당 2「달러」수준에서 맴돌았다는 사실로도 쉽게 알 수 있다. 석유 회사의 과잉생산으로 공급이 넘치면 가격을 인하, 57년에 「배럴」당 2.04「달러」하던 것이 60년8월에는 1.79「달러」가 되기도 했다.
60년의 이 가격 인하 조치는 OPEC결성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전부터 접촉을 벌여 오던 산유국 중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베네쉘라」 「이라크」 「쿠웨이트」 등 5개국 대표가 60년 9월 석유 수출국 기구를 창설하기에 이르렀다. 당시의 주된 목표는 『현 가격을 인하 이전의 수준으로 환원시키도록 노력한다』는 조심스러울 정도의 저자세였다.
사상 최대의 카르텔이 1차 적인 목표가 성공하자 OPEC는 70년 원유 가격의 인상을 결정, 종래의 수세에서 적극적 공세로 나오게 됐다. 이후 석유 회사를 상대로 해마다 가격 인상 협상에 성공해 온 OPEC는 73년10월 4차 중동 전쟁을 계기로 불과 3개월 동안에 4백%의 인상을 단행, 『유사이래 최대 생산자 「카르텔」』로 변모했다.
현재의 OPEC 가입국은 13개국. 72년 총회에서 「트리니다드·토바고」의 가입이 승인됐으나 「이라크」가 공식 비준을 않아 실현되지 않고 있다. 1년에 각료급에 의한 정기 총회가 두 차례씩 열리도록 되어 있으며 개최지는 사무국의 소재지(빈)나 필요에 따라 장소를 옮겨 개최하도록 되어 있다. 임시 총회는 가입국의 요청에 따라 과반수의 동의가 있으면 수시로 소집할 수 있다. 「카타르」의 「도하」에서 열리는 이번 총회는 48차 총회다.
주요 기관으로는 자문 위원회 이사회 사무국 및 경제위원회가 있으며 특히 경제위원회는 세계 석유 시장의 원유 가격 동향의 조사를 주임무로 총회 때마다 보고서를 작성, 석유 가격 인상의 기초자료를 마련, 인상폭을 건의한다. <김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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