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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수학여행 금지해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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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논쟁의 초점

교육부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전국 초·중·고의 1학기 수학여행을 전면 금지한다고 지난 21일 발표했다. 수백 명씩 한꺼번에 떠나는 대규모 수학여행의 폐단을 없애겠다는 취지라고 한다. 이번 조치로 전국 학교가 계획했던 행사를 취소하고 있다. 관광업계도 학교가 행사를 취소하면서 물 수밖에 없는 위약금을 면제해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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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수학여행에 대한 문제 제기는 있었다. 아무런 교육적 효과도 없고, 학생들도 만족하지 않는 수학여행이란 행사를 관행적으로 유지하는 게 타당하냐는 것이다. 안전사고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집체교육 형식으로 진행되는 수학여행은 폐지돼야 한다는 의견도 이번 조치를 계기로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당장 1학기 수학여행 금지로 인해 여행업계가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덮어놓고 수학여행을 금지하는 건 무책임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특히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수학여행이란 기회는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기회이므로 폐지하기보다 대안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광호 경기대 청소년학과 교수와 최진규 서령고 교사에게서 찬성과 반대, 두 갈래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무의미한 관행 … 금지해야

이광호
경기대 청소년학과 교수

온 나라를 집단 트라우마 상태로 빠뜨린 세월호 사건은 우리에게 대규모 집단 수학여행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화두를 던져주고 있다. 세월호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이 타고 있었다. 아직 많은 국민은 젊은 청춘의 생환에 대한 실낱같은 기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현재 고교 수학여행은 본격적인 입시준비를 앞둔 2학년 때 대부분 실시된다. 그간 필요성이나 운영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지적돼 왔다. 무엇보다 수학여행의 교육적 의미에 대한 지적이다. 수학여행은 여가문화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기, 학창 시절을 보낸 기성세대에게는 신선한 추억거리를 제공하는 기회의 장이었다. 여행을 누리기 힘들었던 세대에게 집을 떠나 친구들과 숙식을 함께하며 보내는 시간은 그야말로 귀하고 드문 시간이었다. 그런데 요즘 청소년 세대는 다르다. 안전에 대한 고려도 충분하지 않은 채 오랜 기간 관행처럼 실시되어 온 수학여행이 고된 일상에서 탈출하는 것 이외에 어떠한 교육적 가치와 목적이 있는지 처음부터 다시 검토돼야 한다.

 둘째, 수학여행의 교육적 내용에도 문제가 있다. 수학여행이 우리나라에 시작된 이래로 그 내용은 크게 변한 것 같지 않다. 이번 단원고의 수학여행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언론에 따르면 이 학교는 지난 3년 동안 같은 여행사와 숙소 등 동일한 내용으로 계약을 했고, 기존 선배 학생들은 57%라는 낮은 만족도를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또다시 후배 학생들은 제주도로 가는 배에 탈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똑같은 것을 둘러보게 한 후 저녁이면 자유시간과 장기자랑으로 이어지는 판박이식의 구태의연한 수학여행 프로그램을 보면서 교육과정의 일환으로서 수학여행이 어떠한 내용으로 채워져야 하는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셋째, 수학여행 진행에 있어 전문성 문제다. 수학여행이 일단 대규모로 진행되면 교사 이외에 적지 않은 다른 인력들이 관여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은 학생 안전이나 교육적 배려에서 전문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일정 맞추기에 초점을 두다 보니 수학여행에는 자연스럽게 통제와 규율이 앞서게 되고, 학생들의 반감을 사는 일도 자주 벌어진다. 이 밖에도 수학여행 예산의 낮은 단가를 이유로 부실한 숙소와 식사를 제공하는 여행사의 횡포, 정작 알맹이는 없고 밤의 일탈로 이어지는 주객전도된 일과, 무리한 해외여행 추진으로 인한 과도한 비용과 위화감 조성 문제 등도 그간 꾸준히 제기되어 온 수학여행의 어두운 단면이다. 교육부는 지난 2월 시·도교육청에 수학여행 참여인원을 ‘4학급 또는 150명 내외’로 하라는 ‘수학여행·수련활동 안내지침서’를 보낸 바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학교는 예산부족 등 여러 가지 현실적 여건으로 기존의 익숙한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이번 세월호 사건은 우리에게 또다시 대규모 수학여행의 문제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숙제를 남기고 있다. 대규모 수학여행은 이제 폐지하거나 다른 교육과정으로 전환하는 등 근본적으로 재검토돼야 한다. 수학여행이라는 이름하에 부분적으로 수정·보완되기보다는 전체적으로 다른 방식과 내용의 새로운 학교 밖 학습프로그램으로 거듭나야 한다. 선생님과 학생이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함께 기획해 의미를 부여하고, 교육적인 일상에서 벗어나는 교육과정으로 재탄생해야 한다. 이는 선진 국가로의 도약이라는 짐을 진 우리 젊은 세대에게 과거 관행을 털어내는 작은 배려에 불과하다.

 물론 대규모 수학여행의 갑작스러운 중단이나 폐지는 수학여행을 둘러싼 여행업·숙박업 등에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줄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가 우리 젊은 세대의 부담과 희생 위에 자리할 수는 없다. 앞으로는 더 이상 젊은 생명을 담보하면서까지 떠나는 대규모 수학여행에 온 나라와 부모가 마음을 태우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이광호 경기대 청소년학과 교수

덮어놓고 금지는 무책임하다

최진규
충남 서산시 서령고 교사

국민들을 순식간에 패닉 상태로 몰고 간 세월호 참사로 인해 특히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심정이 말이 아니다. 지난 열흘간 온 국민이 자녀를 잃고 비통에 잠긴 유가족의 아픔을 마치 내 일처럼 여기며 실낱같은 기적의 끈을 잡고 한 생명이라도 살아 돌아오길 간절히 염원하고 있다. 이번 사고는 사고 선박을 운영했던 해운사나 이들의 불법을 묵인한 관계 당국의 도덕 불감증이 근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런데 수학여행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처럼 비춰지는 의견도 있어 아쉬움이 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교육부도 1학기 수학여행을 전면 금지한다고 밝혔다. 물론 문제가 있다면 개선해야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대안도 없이 일방적으로 수학여행을 금지하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수학여행은 교실 수업의 연장선상에서 평상시 접할 수 없는 곳에서, 자연 및 문화를 보고 들으며 지식을 넓힌다는 분명한 교육적 목표가 있다. 또한 경제적 여건상 가족 중심의 레저문화를 접하기 어려운 저소득층 학생들에게는 수학여행이 문화적 견문을 넓힐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무엇보다도 짧은 기간이지만 동료들과 함께 학창시절의 소중한 추억을 쌓는 것으로 수학여행만큼 좋은 자리는 없다. 물론 수학여행이 필연적으로 대규모 집단 이동을 요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보면 상시 사고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상황에 맞게 수학여행의 목적은 유지하되 방법을 달리하면 된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각급 학교의 교육활동은 입시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최근에는 학생부 종합전형(옛 입학사정관제)의 도입으로 자기주도적 학습이 중시되면서 개인의 적성과 흥미에 맞춰 진로지도가 이루어지거나 다양한 창의적 체험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자신의 관심 분야를 찾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뜻을 같이하는 동료나 선후배들과 함께 동아리를 조직해 관심사를 탐구하거나 진로와 관련된 현장을 찾아 경험의 폭을 넓히기도 한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당장 수학여행 같은 단체활동을 폐지하자는 견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지나친 감정적 대응이 아닌가 싶다. 일단 대규모 이동이 필요한 집단 활동은 가급적 자제하되 그 기간 동안 현재의 입시상황에 맞게 소규모 체험활동으로 대체하는 방안이 적절하다고 본다. 초·중·고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학교는 단체활동으로 수학여행과 수련활동 등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봉사활동이나 진로활동 또는 가족이나 동료들이 함께하는 견학이나 다양한 문화체험활동으로 수학여행을 대체하자는 것이다.

 당장 1학기 수학여행 금지로 인해 여행업·숙박업 등 관광 관련 업계나 해당 지역은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우려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배가 안정적으로 운항하기 위해서는 적정한 평형수가 유지되어야 하는 것처럼 한쪽에 치우친 결정은 또 다른 불만을 야기해 불신을 자초하고 사회 통합의 걸림돌로 작용하게 된다. 그래서 정책은 균형이 중요하고 모두는 아니더라도 다수가 납득하고 만족할 수 있는 방안이어야 한다.

 교육당국은 이번 참사를 계기로 수학여행을 비롯한 단체활동을 적성과 흥미에 따라 소규모로 진행할 수 있는 자율적 체험활동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추진하기 바란다. 단위 학교는 일정 기간을 체험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따른 보고서 등 일정한 결과물을 받아 출석으로 대체하며, 학생부에 기록해 입시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실질적이고 유용한 교육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자율과 개성 그리고 창의성이 중시되는 시대다. 개인의 숨어 있는 역량을 찾아내고 이를 실현하는 것이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상이다. 온 국민을 패닉 상태로 몰아넣은 이번 참사를 수학여행의 취지는 살리되 대규모로 움직이는 집단활동보다는 자율적인 체험활동으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최진규 충남 서산시 서령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