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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규연의 시시각각

'국가 개조' 그 비장함에 대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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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
이규연 기자 중앙일보 탐사기획국장
이규연
논설위원

개혁도 혁신도 아니다. 개조다. 총체적으로 뜯어내 다시 만든다는 의미다. 지금의 체계를 부수고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꾸려 할 때나 맞는 표현이다. 이런 엄중한 말이 여권의 핵심부에서 나오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수습책을 두고 ‘시스템 혁신’ ‘패러다임 쇄신’ ‘내각 사퇴’ 같은 표현은 나왔다. ‘국가 개조’는 이를 훨씬 뛰어넘는 거대하고 야심 찬 단어다. 정말 할까. 그렇게 될까. 나라 개조론의 선구자인 도산 안창호 선생에게 그 길을 묻는다.

 ‘…모든 것을 다 개조하여야 하겠소. 우리 교육과 종교도 개조하여야 하겠소. 우리 농업도 상업도 토목도 개조하여야 하겠소 … 심지어 우리 강과 산까지도 개조하여야 하겠소.’

 1919년 중국 상하이에서 선생은 ‘민족 개조론’을 편다. 반복 표현에서 비장함이 느껴진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참담한 현실을 이겨내려면 힘을 키워야 하는데 이를 위해 우리의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고 선생은 절규한다. 도산아카데미원장인 백두권 고려대 교수는 민족 개조론이 나온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도산은 우리 민족의 힘이 모자라 망국을 초래했다고 봤다. 구한말 위정자의 무능·나태와 사회 전반의 거짓말 문화가 나라를 망하게 했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신뢰·정직·실력을 바탕으로 모든 것을 뜯어고쳐야 열강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선생은 생각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도산의 개조론을 수차례 인용했다. 2009년 1월 전국 시장·군수·구청장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4대 강 살리기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지자체가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도 우리의 강산 개조론을 강조하실 정도로 선견지명이 있었다.” 그 후에도 이 전 대통령은 4대 강 사업이 개조론의 일환임을 누누이 밝혔다. 녹색 뉴딜의 권위를 도산의 사상에서 찾으려는 데 못마땅한 시선이 많았다. 과연 4대 강의 밑바닥에 도산 개조론 같은 시대의 절실함이 흐르고 있었을까.

 김영삼 정부인 1993년에도 국가 개조론이 불쑥 튀어나온다. 건국 이래 최대 재난이 몰아쳤던 해다. 항공기가 추락하고 열차가 탈선하며 여객선이 침몰해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러자 여권 실세의 입에서 “건국하는 심정으로 나라를 개조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이후 재난 대응시스템을 확 바꾸겠다면서 현란한 대책을 잇따라 쏟아냈다. 우리는 그 결과를 뻔히 안다. 정권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임기응변에 불과했다.

 2014년에 출현한 국가 개조론의 의미와 미래는 어떨까. 역시 위기탈출용 마술망토인가. 검찰의 칼바람에 제물이 생겨나고 월드컵축구가 시작될 쯤이면 사라질 집단치매성 구호인가. 국가 시스템을 통째로 고쳐 나가겠다는 집권세력의 선언에 대해 국민 입장에서 반대할 이유는 없다. 진정성이 의심된다 해도 일단 지켜볼 일이다. 다만 국가 개조는커녕 재난시스템 개조도 못하고 끝났을 때 그 씁쓸한 기억은 또 역사에 오래 남을 것이다.

 도산 선생은 누가, 무엇을, 어떻게 개조해야 하는지 분명히 제시했다. 지도층의 리더십뿐만 아니라 국민 의식, 사회 시스템, 국토 환경 모두가 개조 대상이라고 봤다. 추진 주체도 남이 아닌, 바로 자신 스스로임을 강조했다. 선생은 또 막연한 구호가 아닌, 교육·훈련·행동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개조가 가능하다고 여겼다.

 박근혜 정부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국가 개조’ 의미에 맞는 비장함을 갖고 있는가. 그럴 각오와 실력은 있는가. 다행히 그렇다면 국가 개조의 대열에 야당·시민사회세력과 손을 잡고 서야 한다. 내각사퇴 정도가 아니라 관피아(관료+마피아)를 깬 뒤 낙후된 사회시스템은 물론 그런 국민 의식과도 맞서야 한다. 다른 분야를 압박하기에 앞서 스스로를 바꾸어야 한다. 95년 전 도산의 민족 개조론은 갈 길을 보여준다.

이규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