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배달·빌딩청소하며 사법시험 준비|「차별의 벽」에 막힌 각고 4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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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30일 기자와 만난 김경득씨는 변호사가 되려 했던 것도 자기 나름대로 인생관이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지난날을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흔히 재일 교포 2세가 그렇지만 김씨도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교육을 받았다. 김석구씨(67·토목노동자·경북 군위군 의흥면 읍내동·화가산현화가산시 중지도556)의 3남 3녀 중 둘째아들인 경득씨가 변호사가 되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중학교 상급생 때부터였다.
한국사람은 일본에서 직업을 갖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차차 알게 되었고 재일 교포들의 억울한 일을 도와주기 위해서는 변호사가 제일 좋을 것 같았다.
이 같은 생각은 화가산현「도잉」고교를 졸업,「와세다」대학 법학 부에 진학하면서부터 더욱 굳어졌다.
그러나 가정사정이 어려워 대학시절 공부에만 전념할 수 없었다. 18세 때 징용으로 일본에 끌려와 종전 후 공사장을 전전, 토목노동자로 일하던 아버지에게만 의지할 수 없었다.
돗자리 3조 방에서 동생 경웅(24·동대공학부 기계학과 4년)과 자취하면서 우유배달·신문배달·「빌딩」청소 등 닥치는 대로 막일을 하여 생활비를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사법시험공부는 졸업 후로 미루었다. 72년 봄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형(경화·38·회사원)의 직장이 안정되어 노부모를 모실 수 있게 되면서부터 가족생계가 지장이 없게 되자 시험공부에 들어갔다.
그러나 아직 대학생인 동생의 생활비·학비가 문제여서 모교「와세다」대학의 주물연구소 숙직야근과 청소를 도맡아 하는 공부였기 때문에 지난 10월 9일 사법시험 제2차 시험합격까지 만4년이 걸렸다.
밤 9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 학교숙직야근순시를 돌아야 했고 아침 8시30분부터 9시까지는 청소를 하여 매월 번 돈 8만「엥」으로 자취하면서 하루 6∼8시간씩 시험공부를 했다. 이 같은 역경에서도 경쟁률 50대 1의 사법시험합격자 4백65명 가운데 38등 이라는 우수한 성적이었다.
재일 교포로서 일본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김씨 외에 7명이 있으나 모두 일본에 귀화했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었다. <동경=김경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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