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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피아 공화국 개조 … "부처 요동칠 만큼 경쟁 도입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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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세월호 침몰을 계기로 대한민국 관료사회의 대대적인 개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침몰의 1차적 책임은 선장과 선원들의 무책임과 선사의 불투명한 여객선 운항 관리에 있지만 이에 못지않게 관료들의 무사안일·보신주의가 사고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23일 “주무 장관이 실종자·사망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현장을 찾아가서 라면을 먹게 생겼나. 총리가 현장에 가서 물을 맞았다고 차 안에 들어갔을 일인가”라며 “국민의 아픔을 자기 아픔으로 생각하지 않고 책임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민심과 유리된 공무원들의 인식을 질타했다.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도 “우리 정부 조직은 뭔가 일이 터져야 움직이는 피동적 시스템”이라며 “세월호 참사는 더 이상은 이렇게는 안 된다는 웨이크업 콜(wake-up call·경종)”이라고 지적했다.

 관료 조직은 과거 산업화 시대에서 국가 발전을 주도하는 견인차였다. 최고의 엘리트 그룹이 참여한 관료사회는 국가부흥에 대한 의지와 강한 책임감이 있었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당시 일개 사무관의 책상 위에서 만들어지는 계획이 나라를 결정했다”고 했다. 그만큼 공무원들이 헌신성을 갖고 주도적으로 일했다는 얘기다.

부처 이익 챙기는 관가 문화 개혁을

 그러나 세월호 침몰 과정에서 보여준 공무원들의 모습은 무사안일·수동적·책임 모면하기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해 원전 사고와 철도파업, 부실 저축은행 사건의 배경엔 관료들의 전관예우형 재취업을 고리로 한 관피아(관료+마피아)의 유착 커넥션이 있었다. 국가 개조의 초점은 한계에 도달한 관료 조직의 수술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이유다.

 지난 16일 제주 VTS(해상교통관제센터)가 세월호로부터 침몰 징후를 처음으로 연락받은 뒤 진도 VTS가 세월호로 연락하기까지는 12분이나 걸렸다. 이 같은 지체의 배경엔 제주 VTS는 해양수산부 관할인 반면 진도 VTS는 해양경찰청 관할이라 조직이 달랐기 때문이다. VTS의 관할 기관이 분리된 데는 해경과 해수부의 밥그릇 싸움 때문이라는 내부 증언이 나온다. 이 교수는 “요즘 관료들의 명함을 받으면 아래에 ‘정부 3.0’이라며 ‘소통’ ‘교류’와 같은 좋은 얘기는 다 써 있는데 현실에선 관계 부처 회의에 참석해 자기 부처의 이익을 챙기고 와야 능력을 인정받고 훈장을 받는 게 관가의 문화”라고 비판했다.

 전관예우형 재취업과 낙하산 인사에 대한 비판도 쏟아진다. 우원식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은 “우리 사회는 온갖 군데에 마피아가 있고 그로 인해 국민의 나라가 아닌 관료의 나라가 됐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한국해운조합은 지금까지 12명의 이사장 중 10명이 해수부 관료이고, 한국선급은 12명 중 8명이 관료 출신이며 선박안전기술공단의 현 이사장은 국토해양부 출신”이라고 지적했다.

 박천오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재난 대책 매뉴얼을 만들었다는데 이건 현장이 아닌 담당자들의 머릿속과 책상에서 만들어진 페이퍼 행정”이라며 “그렇지 않았다면 상황이 발생했을 때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줬겠는가”라고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장관급 인사는 “장관이 현장을 찾아가선 왜 비서관을 보내 유족들에게 ‘장관 오신다’고 안내를 하느냐”며 의전 행정·전시행정의 구태를 비판했다.

철밥통 기득권, 책상머리 행정 수술

 이승건 부산대 조선해양학과 교수는 “조선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화물을 꼼꼼하게 고정시키지 않았을 때 배가 얼마나 위험한지 다 안다”며 “그런데 감독 당국이 현장에서 시간 지체를 이유로 컨테이너·차량 등을 대충 결박하고 출항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고 있었는지 의문”이라며 관리 감독 책임을 소홀히 한 당국을 질타했다.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국가 개조를 위한 관료사회 수술의 대원칙으로 무엇보다도 공무원들의 의식 개조를 들었다. 책임감을 갖고 적극적·주도적으로 일하는 공직사회의 풍토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국가 개조는 곧 공무원의 의식 개조”라며 “이는 국민들의 심부름꾼이라는 공복 의식을 갖는 것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원종 전 수석도 “개인으론 우수한 관료들이지만 기득권에 대한 집착도 대단하다”며 “공직자들은 공복 의식을 가지고 책임지는 자세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보다는 기득권을 지키고 보신하는 데 경도돼 있다”고 비판했다.

고시 중심 충원방식도 뜯어고쳐야

 공무원의 비효율 극복을 위해 경쟁 체제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 전 본부장은 “부처가 요동칠 정도로 경쟁을 도입해 능동적으로 일하도록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박 교수도 “세월호 침몰 직후 곧바로 민간 잠수사들을 대거 투입해 구조에 나섰어야 했다”며 “관료 조직이 민간보다 전문성에서 떨어지는 분야에서는 곧바로 민간 부문의 협조를 받는 아웃소싱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종철 연세대 법대 교수는 “고시 기수를 따져 수직으로 이어지는 기수주의와 부처 내부만을 바라보는 부처 이기주의를 극복하려면 충원 방식을 다양화해야 한다”며 “고시 중심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경로로 관료를 충원해 내부 경쟁까지 유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채병건·권호 기자

◆관피아=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 정부 부처의 관료가 퇴직한 뒤 관련 기업에 전관예우로 재취업하는 유착 관계를 의미한다. 이는 각종 납품 비리나 대형 사고로도 이어지며 부패의 고리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마피아로 비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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