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데뷔」시절 (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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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각 신문에서는 「신춘 문예」 응모 요강이 발표되고 문학을 지망하는 많은 사람들이 바늘구멍을 뚫기 위해 집념을 불태운다.
왜 굳이 이렇게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려고 줄을 잇는 것일까. 무엇보다 「데뷔」가 멋지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독자들 앞에 문학에의 첫 출범이 약속되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격려를 받게된다.
우리 나라에서의 문단 진출은 문학지 추천과 신춘 문예가 그 대표적이다. 문학지 추천은 2회에서 3회로 추천 완료, 기성 작가의 대우를 받게 된다. 신춘 문예의 단 한번으로 결판내는 통쾌함에 비한다면 몇년이고 그냥 기다려야하는 것이 문학지 「데뷔」다. 그뿐인가. 아무개의 문하생이 되어 착실히 그의 아류가 되어야만 비로소 추천이 가능하다. 이렇게 추천되어 나온 문학 정신은 지극히 수동적이요,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더 심한 경우 아무개의 풍에서 일생을 맴돌다가 사라져 버린다.
여기 비하면 신춘 문예의 그 독보적이요, 능동적인 「데뷔」 는 자신의 문학 정신을 마음껏 휘갈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그 누구의 빛깔도 닮지 않으려는 나 자신의 원초음, 그것에의 불길만이 있을 뿐이다. 신춘 문예에는 그러나 줄기차게 돌보아줄 후원자가 없다는 약점이 있다. 물론 이 행사를 치르는 신문사가 있다지만, 작품 자체를 소화시킬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문단 그 자체다.
자신의 피와 땀으로써 자기의 문학 세계를 어느 정도 정립했을 경우만 이 신문사는 보도기능의 한계 안에서 도울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일단 문학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적어도 자기 자신의 두 발로써 그 어떤 멸시와 냉대의 비바람도 견딜 수 있는 각오가 서 있어야 한다.
자신의 일생을 문학에 내던지는 그러한 혼에 있어서는 이점은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 적당히 문학을 하는 체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신춘 문예야말로 절망적인 「데뷔」다. 이런 친구들은 아예 문학권에 들어오질 말아야 한다.
나의 경우 단 한편의 시를 붙들고 2년이 넘도록 울고 웃고 한 결과 그 절망과 수모의 극치에서, 신춘 문예의 등용문이 열린 것이다.
물론 스승도 글벗도 없는 나만의 절대 공간에서였다. 그 때 만일 신춘 문예에서 내 시가 뽑히지 않았더라면 나는 벌써 이 세상 사람은 아니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내 혼과 몸은 견딜 수 없는 시련 속을 헤매고 있었다.
이 몸과 이 마음을 그냥 송두리째 뽑아 던지는 곳에 문이 열린다. 이는 비단 신춘 문예에 한정된 것만은 아니다. 세상만사가 모두 그런 것이다. 이를 옛 사람들도 이렇게 말했다. 『전신으로 살고 전신으로 죽는다. (생야전기현 사야전기현-벽암록).』
까짓껏 잘하면 1백년, 아니면 60년이면 내 인생이 끝난다.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내가 가고자하는 곳에 몸과 마음을 다 집어던져라. 그래야 문이 열린다.

<약력>
▲54년 부여 고란사 입출 ▲69년 신춘 「중앙 문예」 시 당선 데뷔 ▲74년 불교 신문 기획 부장 역임 ▲현재 대한 불교 조계종 교무국장 ▲저서 『선으로 가는 길』·시집 『비원』『선시』·역서 『중국 서예의 역사』『장한가』『수상집』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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