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시인·이시영 <69년 신춘 중앙 문예 시조 당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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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68년 늦은 가을, 신춘 문예 모집 광고가 우리들의 가슴을 죄게 하던 무렵, S와 나는 이불 짐을 메고 서울과 경기도의 접경 지역인 도봉산 기슭, 한 작은 시골 마을로 들어가 버렸다. 하숙 짐을 풀고 발을 씻고 새로 끼운 전등을 켜고 저녁상 앞에 앉았을 때 S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이상한 열기로 술렁이던 강의실과 기염의 막걸리 집에서 멀어져 이렇게 조용한 저녁상 앞에서도 마주 앉을 수 있다는 것이 조금은 경이로웠다.
도봉 산정을 가로지르는 고압 전류의 웅웅거리는 소리, 낮게 짖는 소리, 마른 다듬잇 소리, 「하모니카」 공장의 낮은 단절음 등을 들으며 우리는 무엇인가를 쓰고, 생각하고, 쓰고 버리고 했다. 신춘 문예가 무슨 고시인줄 알고, 신춘 문예가 무슨 등용인 줄 알고, 아니 고시도 아니고 등용도 아닌 것이 못내 섭섭하고 섭섭해서 온 종일을 쓰고 버리고, 버리는 것이 안타까워 또 썼다.
그러나 불을 끄고 누우면 명료해지던 머리, 계곡을 흘러가는 물소리, 버린 시구와 아쉬움. 에라, 모르겠다. S를 깨워 밤새도록 화투를 치다 나가보면 문간방에 세든, 근처 라면 공장에 다니는 아가씨들의 두런거리는 말소리. 두달 뒤에 우리가 이불을 싸고 있을 때 처음으로 말을 걸어왔다. 글을 써서는 무엇하려느냐고. 그러고는 덜렁 이불 보따리를 이고 종점까지 가서야 내려놓아 주었다.
글을 써서는 무엇 하려고 했는지 모르지만, 그해 12월24일 오후 나는 우체부 아저씨로부터 한 통의 전보를 받았다.
신문사에서 사진을 찍고, 당선 소감을 적고, 거리에 나와 보니 사람들이 바쁘게 제 갈 길들을 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때까지 주욱 외로워했던 것 같다.
우수한 많은 문인이 신춘 문예를 통해 등단했지만 신춘 문예가 가장 좋은 문단 「데뷔」관문 일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나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요 몇햇 동안의 당선작들을 읽어 보라. 신춘 문예의 방법 그 자체엔 어떤 변화가 일어남직도 하다.
겉만 화려할대로 화려해져 버린 것 같다. 잡지의 추천 작품은 기성 작가들의 그것보다 참신한 구석이라곤 따로 찾아보기 어렵다. 신춘 문예도 잡지도 정말 새로운 얼굴, 새로운 작품을 찾아내야겠다는 의욕들이 있어야할 것 같다.
어쩌면 한국 문단 구조 자체가 신인들에게, 나올 때부터 두손들고 별탈 없이 나와 주기만을 모르는 사이에 기대하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이상할 정도로 보수적인 색채가 짙은 우리의 문학 잡지들이 갑자기 새로운 의욕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스스로 쌓아 올렸다고 자위하고 있는 그 문단적 권위 의식 때문에. 더 바람직한 「데뷔」 제도가 생겨나지 않는 한 오늘의 신춘 문예에 그것을 기대해 볼 수밖에 없는데 대부분 타성적 의무적으로만 통하고 있는 것 갈다. 『정말 제정신 가진』 신인을 찾아야겠다는 의욕을 갖고 『보아라, 너희 문단 안에서 못 찾은 신인을 밖에서 우리가 찾았다』고 내놓을 때 문단도 잡지도 정신이 번쩍 들것이고, 무엇보다 신인들이 정신 똑똑히 차리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신문이, 문단이 정신 차리지 못한 채 어떻게 신인들에게만 새로운 작품을 못 써낸다고 질책할 수 있단 말인가. 신인다운 신인 없는 문단도 깊이 병든 것이지만 새로운 작품 없는 신춘문예 또한 오려낼데를 가려서 오려내 버리고 과감히 새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49년 전남 구례 출생
▲서라벌 예대 및 고대 대학원 국문과 수료
▲69년 중앙 신춘 문예 시조 부문 당선 및 월간 문학 제3회 신인상, 문공부 신인상 수상
▲『눈이 내린다』『서시』『백로』 등 작품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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