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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피어나지 못한 수영 꿈나무 러시아 슬라바군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에는 안산 단원고 다문화가정 학생도 있다. 세르코프 빌라체슬라브(17)는 21일 오후 세월호 선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빌라체슬라브는 러시아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한국으로 관광 온 어머니를 부산 해운대에서 만나 결혼했다고 한다.

빌라체슬라브는 한국과 러시아 국적을 모두 갖고 있다. 다문화 가정에 대한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 때문에 어머니와 함께 한동안 러시아에서 살았다. 8세 때인 2005년 한국에 돌아온 그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안산시 선부동의 집 근처 수영장을 다녔다. 아버지 어모(43)씨는 “아들이 수영을 워낙 좋아해 하루에도 몇 시간씩 훈련했다”고 말했다. 그 때부터 대한민국 국가대표 수영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이중국적자는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중학교 때 수영을 포기했다. 어씨는 "아들이 한국 단일 국적을 신청했는데 절차가 계속 미뤄졌다”며 “국적 획득이 늦어지면서 수영에 흥미를 잃은 것 같다”고 말했다.

빌라체슬라브는 성격이 원만해 학교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다. 친구들은 이름이 긴 그를 ‘슬라바’라고 불렀다. 빌라체슬라브는 이번 참사로 희생된 같은 반 정차웅군과 가장 친한 사이로 알려졌다.

어씨는 “선장이 선실에 대기하고 있으라는 말만 하지 않았으면 수영을 잘하는 아들이 충분히 살았을 것”이라며 울먹였다. 그는 “1년에 한번씩 가족여행을 떠났는데 이제는 다 틀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대책본부가 22일까지 확인한 세월호 외국인 탑승자는 빌라체슬라브와 필리핀 국적 카브라스 알렉산드리아(40), 마니오 에마누엘(45), 중국 국적의 조선족 한금희(37), 이도남(38), 중국인 리시아하오(46) 등 6명이다. 이 가운데 필리핀인 2명은 구조됐으며 이씨와 리시아하오는 숨진 채 발견됐다. 한씨는 실종상태다.

이씨와 한씨는 결혼식을 앞두고 휴가를 얻어 제주도로 여행가기 위해 세월호에 올랐다가 변을 당했다. 이들은 안산의 한 중소기업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세월호가 짙은 안개로 출발이 지연되자 선사측에 화물칸에 실은 차를 내리고 여행을 취소하겠다고 알렸다. 그런데 선사측은 출발시간이 임박해 배를 빼기가 곤란하다고 해 할 수없이 여행을 떠났다. 유족들은 “결혼의 꿈에 부풀어 있는 이들이 이런 끔찍한 일을 당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안산=임명수·이상화기자 lm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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