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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당의 지도체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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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당 내분을 수습하면서 신민당이 집단지도체제를 채택했을 때 당 내외에선 앞으로의 당 운영에 대해 걱정이 적지 않았다. 집단 지도체제가 조화의 묘를 살리지 못해 당의 무력화와 분파의식을 촉진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한때 커졌던 이런 걱정을 극복하고 신민당이 각 파의 타협으로 기구를 구성하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신민당은 10일과 11일 전당대회가 끝난 지 거의 두 달이 다 되어서야 18명의 정무위원과 중요당직자를 임명했다. 전 같으면 당 간부의 임명쯤은 전당대회 후 한 열흘이면 대개 해내던 일이다. 당 간부의 인선이 이토록 난산을 거듭하게 된 것은 당내 파벌간의 이해가 잘 조정되지 않았던데 연유한다는 것이다. 우선 신 주류와 구 주류간의 조정이 어려웠고 거기에 더해 반 김영삼이라는 당초 목표를 이룬 신 주류내부의 파벌간 이해마저 조정이 쉽지 않았다는 얘기다.
임명된 당 간부의 면면을 보면 어떤 원칙에서 인선이 이뤄졌는지 성격이 뚜렷하지 못하다. 다선 의원을 우대한 것도 아니므로, 구태여 성격을 부여한다면 전에 비해 젊어졌다고 나 할까. 한가지 철저하게 적용된 것이 있다면 파벌안배, 파벌에의 충성도 란 기준이었던 것 같다.
집단지도체제 자체가 파벌의 현실을 제도화한 것이긴 하지만 이토록 파벌 중심체제가 심화되어선 국민이 바라는 야당의 체질근대화란 과제에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는지 궁금하다.
집단지도 체제에 장점이 있다면 그것은 당내 모든 세력의 공존과 참여를 보장함으로써 민주적인 정당운영을 기할 수 있다는 측면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이 제대로 발휘되기 위해선 지도자들 간에 파벌보다는 당을 앞세우는 호 양과 조화의 정신이 필요하다. 그렇지 못하고 파벌의 소장에만 집착하는 소승적 생각을 떨어버리지 못하면 집단지도체제는 당의 무력과 비효율만 더하게 하는 제도적 질곡이 될는지도 모른다.
공교롭게도 지금 신민당 최고위원회는 신 주류 3명·구 주류 3명의 동 수로 구성되어 있다. 때문에 각파가 자기입장만 고집하는 경우 모든 결정이 교착상태에 빠질 우려가 있다. 어느 한쪽이라도 타협의 원칙을 지키지 않고, 독주와 고집의 유혹에 빠지면 야당은 움직이지 조차 못할 판이다. 이러한 위험은 이미 정무위원과 당직자 인선과정에서 단순한 가능성만이 아닌 현실문제로 제기되었다.
그런 위험이 비단 당직인선에 국한된 문제이겠는가. 정기국회가 개회된 지 50일이 넘어 이미 내년예산안의 상임위예비심사가 거의 끝나 가도록 신민당은 예산삭감규모에 대한 당론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항간의 큰 물의를 빚고 있는 지방세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신민당이 어떤 복안을 갖고 있는지,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동해어선사고에 대한 신민당의 책임규명방침은 어떤지 국민에게는 궁금한 것이 하나둘이 아니다.
신민당이 좀 더 효율적으로 가동하지 않을 때 국민의 궁금증과 불만은 누적되기 쉽다.
집단지도체제 하에서 더욱이 최고위원을 동 수로 반분한 상태에선 과거와 같이 누가 당권을 잡았다는 식의 얘기는 성립할 수 없게 되었다. 당 지도층 모두가 더도 덜도 아닌 당의 운영과 발전의 책임을 통감하고 조화와 단합의 정신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자세가 요구되는 것이다. 새로 출범한 신민당 지도부가 단합과 건투로 새로운 야당 상이 정립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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