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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는 근로자를 사랑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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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흔히 관민, 도농, 빈부, 노사 등의 개념은「전후」나「동서」라는 개념만큼이나 대립적 내지는 대향 적인 것으로 오해되는 수가 없지 않다. 이러한 편향적 생각은 불행했던 과거의 찌꺼기에서 어느 정도 기인하는 듯 하다. 봉건관료 체제하에선 관이라는 것과 관아가 있는 도시라는 곳은 뭇 백성들과 이들이 모여 사는 시골과는 화합하기 어려웠다. 또「호모·에코노미쿠스」적인 이익동기만이 지배하는 경우 빈부와 노사의 상호관계란 불행하기 쉽다.
그러나 이러한 대립적 도식은 결코 정상적이거나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간혹 그러한 잔재가 남아 있다면 고쳐져야 할 과도기적인 관계일 뿐이다.
현대사회에서 바람직한 이들의 상호관계는 조화와 협동을 통해 공동선을 추구하는 동참자의 관계다. 이러한 동참자적인 관계의 형성·발전을 위해 요청되는 것이 바로 다름 아닌 상호간의 사랑이다. 사랑은 이해를 포괄한다.
그것은 관민이나 도농이나 빈부나 노사를 막론하고, 모두의 협동과 창조의「에네르기」를 지탱하는 지주다.
『종업원들이 내 공장이라는 애착을 갖게 하자면 먼저 기업가 측에서 도움과 사랑을 쏟아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말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 경우, 사랑이라 해서 반드시 이해를 초월한 희생만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근로자들의 기여에 대한 적정한 몫을 인정하고, 노동의 생산성을 유지 향상시키려는 배려가 중요하다. 그 결과는 근로자에게만 이익이 돌아가지 않고 생산성의 향상을 통해 결국 기업에로 돌아온다.
기업가가 근로자에게 베푸는 사랑의 형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안정된 고용의 보장과 적정한 임금, 그리고 각종 복지·후생에 대한 배려다.
아무리 다른 조건이 좋다 하더라도 사람 귀한 줄 모르고, 일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 종업원을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해고하는 기업가라면 애정 있는 기업가라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그보다는 어렵더라도 서로 같이 고생하자는 기업가에게 더욱 푸근한 정이 느껴진다.
안정된 고용의 보장 못지 않게 기본적인 것은 적정한 임금의 보장이다. 적정한 임금의 제1차적 기준은 생활급의 보장이다. 따라서 종업원에게 생활급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기업가는 스스로 종업원들에 대한 애정을 다했다고 자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종업원들에게 최소생활비 이상을 보장하면 기업가로서의 할 일을 다한 것일까. 그렇게는 말할 수 없다. 적정한 임금이라는 것은 생활급 이외에도 제공된 노동의 성질 및 그 기업의 경영수지란 요인 등과 밀접히 연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기업의 규모·성질·경영실태와 노동의 성질 등에 따라 적정 임금의 수준은 다양할 수 있다는 얘기다.
종업원의 복지후생에 대한 배려는 기본적으로 이렇게 안정된 고용과 적정 임금이 보장된 연후의 문제다. 안정된 직장이 보장되지 않고 박봉에 허덕이는 판에 복지후생 운운하는 것은 애정의 표현이라 기 보다 가식이란 평을 듣기 십상이다.
기업주에게 애정이란 말이 해당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저임금을 통해 자본축적의 극대화를 꾀하려는 일부기업인의 전근대적인 임금 관이 혁신되어야 한다. 기업가의 애정과 종업원의 기업에 대한 애착은 비례한다는 것을 인식, 기업인들이 애정을 통한 노동생산성의 제고와 경영개선으로 자본축척의 증대를 도모하려는 태도가 요청되는 것이다.
노사가 함께 사랑으로 동참자가 될 때 기업이 발전하고 이것이 곧 사회와 나라의 발전이라는 공동선에의 디딤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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