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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부실한 안전검사 뒤엔 '해피아'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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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세월호 침몰 사건을 계기로 해양수산부 출신 낙하산 인사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해수부와 마피아를 조합한 말인 ‘해피아’가 선박 안전 업무를 맡는 기관의 임원 자리를 차지하면서 정부의 감독 기능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21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해양수산 관료 출신들이 38년째 해운조합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것 또한 서로 봐주기 식의 비정상적 관행이 고착돼온 것은 아닌지 밝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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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피아와 관련한 비판의 표적은 한국선급이다. 한국선급은 지난 2월 세월호에 대한 안전 검사를 수행한 곳이다. 이때 한국선급은 세월호 선체에 대해 문제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이번 사고가 발생하면서 “당시 안전 검사가 허술하게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민간 기관인 한국선급은 1960년 출범 당시 해운사들이 출자금을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운업계의 입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다. 반면 선박 검사에 대한 정부 위탁 업무를 맡기 때문에 정부 눈치도 봐야 한다. 이로 인해 김규섭 정부대행검사본부장이 정부의 감독 기능을 막아주는 완충 장치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 본부장은 해수부(국토해양부 포함) 시절 해사기술과장을 지냈다. 현재 전영기 회장은 한국선급 내부 승진 최초 사례지만 역대 대표이사 10명 중 8명은 해수부 출신이다.

 선박안전기술공단도 부원찬 전 여수지방해양항만청장이 이사장 자리를 맡고 있다. 공단은 정부 위탁으로 선박 도면 승인과 같은 안전 검사 업무를 맡는다. 공단은 2007년 선박검사기술협회로부터 재산을 인수해 만들어졌다. 승객 안전과 직결된 업무를 하는 곳이지만 해피아 낙하산이 이사장이어서 업계-공단-정부 간의 완벽한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국해운조합도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다(중앙일보 4월 19일자 8면) . 세월호가 인천항을 출발하기 전 해운조합이 승객 명단 내용이 담긴 안전점검보고서를 확인하거나 최소한 보관 위치를 확인해야 하는데, 이 역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고 발생 6일째인 21일까지도 정부는 정확한 탑승인원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중국 정부가 자체적으로 출입국 기록을 확인해 “중국인 4명이 세월호에 탑승했다”고 발표하면서 정부가 중국 네티즌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해운사들의 이익단체인 해운조합이 회비를 내는 회원사에 대한 안전관리를 한다는 것부터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 주성호 해운조합 이사장은 국토해양부 시절 2차관을 지냈다. 해운조합은 78년 이후 지금까지 해수부 출신 관료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정부 부처 관계자는 “퇴직 후 소속 공공기관으로 옮기는 관료는 쉽게 파악되고 그에 따라 여론의 비판도 받지만 해수부처럼 위임 업무를 많이 갖고 있는 곳은 어떤 관료가 어디로 갔는지 눈에 잘 띄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피아가 진출한 곳은 선박 안전 분야뿐만이 아니다. 이장훈 한국선주상호보험조합 고문은 해사안전정책관 출신이다. 해수부는 조합이 체결한 보험계약 내용을 바꿀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조합에 손해가 생길 수 있는 결정을 해수부가 내릴 수 있어 조합으로선 정부에 대한 연락 창구 역할을 할 관료 출신이 필요한 셈이다.

 결국 해수부에서도 예외 없이 나타나는 관료 낙하산에 따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에 대한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거나 정부 제재를 방어하기 위해 민관 가릴 것 없이 낙하산 영입에 나선다”며 “그 피해는 국민이 질 수밖에 없고 세월호 사건도 그런 낙하산 관행과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세종=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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