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삼키지 말고 눈물로 쏟아내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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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상처받은 사람끼리 아픔을 나누고 봉사하며 살았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가족을 잃은 분 에게 제 경험이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11년 전인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 참사로 고교 3학년(사고 당시) 딸을 잃은 황명애(57·여·사진)씨가 전한 위로의 말이다.

 21일 기자와 만난 황씨는 딸이 고 2 때 수학여행 가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생전에 딸에게 못 준 사랑을 봉사하면서 이겨내고 있다”고 말했다. 황씨는 세월호가 잠긴 모습을 보는 순간 딸의 사고 순간이 생각났다고 했다. 며칠 동안 가슴이 답답해지고 잠이 오지 않아 병원치료까지 받았다. 그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 겁니다. 사망자 명단에 가족 이름이라도 뜨면 심장이 멈출 것 같은 충격을 받겠지요.” 황씨는 “억지로 고통을 삼키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때론 눈물을 흘리고 오열하면서 모두 쏟아내세요. 그래야 아프지 않습니다”라고 조언했다. 그는 대구지하철 참사 희생자 가족들과 23일 진도를 찾을 예정이다. 황씨는 현재 대구지하철참사 대책위원회 간부로 활동 중이다.

 영남대 가정학과에 합격한 그의 딸은 아르바이트를 가던 중 대구 지하철 중앙로역 1080호 다섯 번째 칸에 갇혀 변을 당했다. 여객선 선장이 일찌감치 배를 탈출한 것처럼 기관사가 지하철을 빠져나갔다. 지하철이 화마에 휩싸여 192명이 목숨을 잃었다.

 황씨는 사고 직후 대구시 동구 효목동에서 남구 대명동으로 이사했다. 주위의 위로의 말도 듣기 싫어서였다고 한다. “힘들지. 산 사람은 살아야지. 세월이 약이다” 등의 말을 들으면 가슴이 더 아팠다고 했다. 이사 가서도 1년여간 바깥 출입을 거의 하지 않았다. 당시 사고가 난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3층에 찾아가 딸의 이름을 부르며 울면서 몇 시간씩 앉아 있기도 했다.

 정신적 충격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다. 그러다 집 근처 장애인 시설을 찾아가 설거지나 청소 등의 봉사활동을 했다. 삶의 의욕을 잃고 홀로 지내는 게 세상을 먼저 떠난 딸에게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시설에서 6개월간 봉사활동을 한 뒤 다른 지하철 사고 희생자 가족들을 만났다. 이후 이들과 대화하며 아픔을 나누며 지내고 있다.

대구=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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