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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사건들이 고스란히 갇힌 곳 … 동굴은 함정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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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동굴에는 원초적 매력이 있다. 인류가 지상에서 산 역사보다 동굴 속에서 산 역사가 더 길지 않나. 동굴에 가면 잊혔던 그 매력이 되살아난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조경남(38·사진) 박사는 젊은 ‘동굴 박사’다. 대학생(강원대 지질학과) 때부터 전국의 동굴을 누볐다. 지금까지 탐사한 석회 동굴만 200여 곳. 개중에는 63빌딩을 거꾸로 세워놓은 것 같은 곳(강원도 정선 유문동 수직굴, 약 200m)도 있고, 불과 10m 깊이에 너무 좁아 옷과 헬멧을 벗고서야 간신히 들어갈 수 있었던 곳도 있다. 조 박사는 그중 15개 동굴에서 채취한 석순 등을 분석해 과거 55만 년간 지구 북반구와 남반구에 정반대 기후변화가 일어났음을 밝혀냈다. 논문은 지난달 말 순수 국내 연구진이 주도한 기후변화 연구논문 중 처음으로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Nature)’에 실렸다. 대전 연구원에서 조 박사를 만나 ‘동굴의 매력’에 대해 물었다.

 -언제부터 동굴 탐사를 했나.

 “대학 시절 동굴탐험 동아리에 가입한 게 계기가 됐다. 한참 때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갔다. 수㎞ 이상 되는 동굴을 측량할 땐 2박3일을 동굴에서 보내기도 했다. 낮·밤 구별이 안 돼 졸리면 비닐을 덮고 자고 깨면 또 측량을 하곤 했다.”

 -동굴을 과거 자료를 담고 있는 ‘하드디스크’라고 하던데.

 “동굴은 함정이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 안에 다 잡힌다. 태풍이 들이부은 자갈, 지진으로 쓰러진 동굴 생성물이 그때 그 모습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잘 연구하면 쓰러지는 현장을 (재구성해) 볼 수도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동굴을 고른다면.

 “과학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곳은 제주도 용천동굴이다. 용암동굴 위에 조개껍데기가 덮여 석회동굴에나 있는 석순·종유석이 많이 만들어졌다.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동굴에 속한다. 가장 아름다운 곳을 꼽자면 강릉 옥계의 임곡동굴이 최고다. 안에 폭포가 있고 동굴 생성물도 다양하다.”

 -왜 동굴을 연구하나.

 “동굴은 과학자들이 아직 제대로 접근하지 못한 마지막 영역이다. 한마디로 블루오션이다. 동굴탐험이라는 행위 자체가 주는 즐거움도 있다. 땅속에서 즐기는 암벽 등반 같다고 할까. 다른 사람의 발자국이 남아 있지 않은 미공개 동굴에 처음 들어가면 두려움이 앞선다. 하지만 결코 멈출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대전=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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