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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오바마 방문 앞두고 야스쿠니 도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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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21일 일본 도쿄 야스쿠니 신사의 춘계 예대제를 맞아 아베 총리가 봉납한 화환(왼쪽)에 ‘내각 총리대신 아베 신조(安倍晋三)’라고 쓰인 리본이 달려 있다. 오른쪽 화환은 야마자키 마사키(山崎正昭) 참의원 의장이 보낸 것이다. 오른쪽 사진은 태평양전쟁 전몰자 유족들이 이날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1인당 1만 엔(약 10만원)씩 요구하는 소장을 도쿄지법에 제출하기 위해 행진하는 모습. [도쿄 로이터·신화=뉴스1·뉴시스]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21일 춘계 예대제(例大祭·제사·21~23일)를 맞아 야스쿠니(靖國)신사에 ‘마사카키’라 불리는 화분 형태의 공물을 봉납했다. 지난해 12월 26일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한 지 4개월 만이다. 아베 총리가 직접 참배한 건 아니지만 각료들의 참배가 이어질 경우 시기상 한·미의 불만이 고조될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23~26일)을 앞두고 있고, 세월호 사고로 한국 국민이 비탄에 잠겨 있는 때다.

 오는 23일 일본을 방문하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한·미·일 3국 공조회복을 순방의 목표로 하고 있다. 북한의 위협과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런 와중에 일본 정부 각료들이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된 야스쿠니를 방문하는 것은 한국을 자극해 미국의 구상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공물 봉납에 대해 외교부는 “역내 국가 간의 선린관계뿐 아니라 지역 안정을 저해하는 시대착오적 행위”라며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문제 될 것 없다’는 생각을 거듭 밝히는 점도 한국 국민의 정서를 건드리고 있다. 그는 지난해 봄·가을 제사 때 야스쿠니에 공물을 봉납했고 12월에는 직접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비난을 샀다. 아베 총리는 지난 20일 요미우리TV에 출연해서도 “국가를 위해 싸우다 쓰러진 병사를 위해 손을 모으고 비는 것은 지도자의 당연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역사문제로 한·일 관계가 악화되는 걸 우려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지난해 12월 방일 당시 아베 총리에게 야스쿠니 신사 참배 자제를 요청한 점이나,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후 “실망했다”는 논평을 내 놓은 것도 이런 이유다. 일본도 이런 미국의 우려를 알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21일 “(아베 총리의 공물 봉납은) 사인(私人)의 입장에서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견해를 밝힐 일이 아니다”라며 “(미·일 정상회담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베 총리의 공물 봉납에 이어 일본 각료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줄을 이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미 신도 요시타카(新藤義孝) 총무상과 후루야 게이지(古屋圭司) 일본 납치문제 담당상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한국의 비난 여론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에 일본 메이지(明治)신궁과 한국의 경복궁을 방문한다. 양국의 역사를 모두 존중한다는 메시지를 부각하려 한다. 하지만 ‘야스쿠니 도발’에 따라 오바마의 한·미·일 공조 구상이 난관에 부닥칠 가능성도 있다. 봉영식 아산정책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아베 총리는 보수 지지층과 미국의 입장을 모두 고려해 야스쿠니에 공물을 봉납했겠지만 한국 국민 정서를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며 “미국은 한·미·일 공조를 위해 일본을 자제시키는 방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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