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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7)<제자 김은호>|<제52화>서화백년(73)|이당 김은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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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조선미술 원 창립>
후소회가 탄생하던 1936년 봄에 나는 또 하나의 큰일을 벌였다.
어느 날 서양화가인 박광진을 만나 미술 원을 세워 보고 싶다고 말했다가 그에게서 반가운 소리를 들었다. 박광진은 개성의 이름 있는 부잣집 아들이어서 서울에도 집이 있었다.
그의 소유로 되어 있는 서울 중화동(현 한국일보 옆)의 집터는 꽤 넓었다. 그는 나의 미술 원 창립계획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면서 집터를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무의 집터에 즉각 건물을 신축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는 조각가 김복진과 동양화가 허백련을 끌어들여 우리들의 계획에 참여시켰다.
내가 이들과 손잡고 나선 것은 동양화·서양화·조각의 3부를 갖춘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종합미술연구소를 운영해 볼 욕심에서였다.
이런 우리들의 움직임은 곧 신문의「뉴스」거리가 되었다.『조선화단의 저가 중에는 자기의 화실을 가지고 연구하는 일방으로, 혹 화실의 일부를 개방하여 후진의 지도에 힘쓰는 이가 전연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규모가 그리 크지 못하고 여러 가지 불편도 없지 아니하던 바 이번에 동양화의 김은호·허백련, 서양화의 박광진, 조각의 김복진 4씨가 시내 중학정20번지2호에 조선미술 원을 창설하기로 되어, 불일 내로 2층 원사의 신축에 착수하리라 한다. 이와 같이 종합적으로 된 미술 원은 이것이 조선에 있어서는 처음으로, 원사가 낙성 되는대로 연구생도 모집, 지도할 뿐만 아니라 매년 정기적으로 그 장소에서 전람회도 개최할 터이라 하며, 그밖에 예원의 여러가지 회합에도 장소를 제공하게 되리라 한다』고 보도했었다.
한편 건물을 맡아 짓기로 한 나는 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그동안 힘써 모아 애 장하고 있던 값진 고서화들을 박광진의 소개로 개성의 재벌이며 수집가인 주덕장에게 잡히고 2천 원을 얻었다. 이 돈을 기금으로 해서 미술원 건물을 순조롭게 지어 나갔다.
나는 내 계획대로 일이 잘 되어 나가면 내가 아끼던 고서화들은 다시 찾아올 심산이었다. 나로서는 배수진을 치고 한 일생일대의 큰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허백련과 김복진은 연구생지도만 담당하기로 되어 있어 경비 염출은 전적으로 내가 맡아서 해야 했다.
동분서주하며 뛰어다닌 보람이 있었던지 착공1년 만인 37년 봄에 조선미술 원 건립 아담한 2층집으로 준공되었다. 매일신보는 건물의 사진을 찍어 크게 보도했다.
미술 원을 준공하고 3월31일부터 1주일동안「낙성기념전」을 열었다. 이때는 주로 소품들을 내놓은 조촐한 잔치였지만 그런대로 의미가 있었다.
화가이면서 신문기자를 하던 윤희순이『조선미술 원 낙성기념 소품 전을 보고라는 제목으로 4월6일자 매일신보에 자세히 썼다.『이번에 조선미술 원이 탄생함은 실로 장하다 하겠으니, 그것은 미술가 자신의 주머니와 땀을 짜내어 가지고 황량한 형도를 용이하게 답파하였음과 연구 발표 회합의 모든 욕구를 다 충족하려는 대기도 밑에서 용자를 나타낸 까닭이다.
간부를 보건대 이당·의재 양씨는 남-북 계 동양화단의 쌍벽이며, 서양화의 박광진씨는 이미 동도에서 본격적으로 완미에 가까운 탁마를 마친지 오래인 중진이고 또 김복진씨는 조각 계의 태두이니 모두 각분야의 혹성들인데다가 혹은 재와 지로서, 혹은 열과 계로서, 혹은 재로서 한 모퉁이씩의 특이한 장기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니 반드시 유종의 미가 있으리라 믿는다』고 격려했다.
소품 전은 상하 층의 3실로 나누어 동양화2실, 서양화·조각1실로 진열했다. 이때 나는『장미』를 2점 그려 1실과, 2실에 나누어 걸고,『매월』등 15작품을 내놓았다.
찬조작품 중에는 춘곡 고희동의『백석청계』, 심산 노수현의『산수』, 묵로 이용우의『추』, 무호 이한복의『조』등 이 출품되어 기념 전을 한층 빛내 주었다. 황용하의『묵국』, 이석호의『매석』도 눈길을 끌었다.
서양학부에는 박광진의『풍경화』와 찬조 출품된 구본웅의『불탄』『부인상』, 이승만의『풍경』, 도상봉의『백합』, 이제창의『나부』『화』등 이 새로운 맛을 보여줬다. 김종찬과이규상도 작품을 냈다.
조각 부에서는 김복진이 연구생과 함께 작품을 내놓아 그들에게 힘을 불어 넣어 주었다. 김복진은 그의 득의작인『불상』을 출품, 조각의 신경지를 보여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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