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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경제 읽기] 세종은 어떻게 공공부문 개혁에 성공했나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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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초부터 밀어닥친 가뭄과 태풍의 반복으로 인한 경제위기로 세종은 당황했다. 갑자기 왕위를 물려받아 준비도 안 된 형편에 천재지변까지 겹친 것은 정치가 엉망이어서 하늘이 벌을 내린 게 분명하다고 믿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세종은 신하들에게 해법을 물었다. “대소신료들은 천계(天戒)를 깊이 생각하여 위로는 임금의 잘못 및 관료들의 흉허물과 아래로는 마을과 백성의 이해 및 병폐를 숨김없이 직언하여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걱정하는 나의 지극한 바람에 부응하도록 하라.”(세종실록 5년 4월 25일)

계묘대개혁, 갑사 구조조정 과감히 단행
신하들은 이구동성으로 공공부문 개혁을 제안했다. 관료들의 부정부패 척결과 함께 불필요한 관직(용관·冗官)을 과감히 혁파할 것을 주문했다. 세종은 대대적으로 공공부문을 혁신하기로 하고 원칙을 정했다. 첫째, 모든 부서가 예외 없이 개혁의 대상이다. 둘째, 신속하고 과감하게 개혁한다. 셋째, 꼭 필요한 부서는 인원을 확충한다.

일러스트 강일구

이에 따라 전체 29개 중앙 공공기관 중 24곳(83%)의 인원이 감축됐다. 5개 기관(선공감, 제용감, 충호위 제조 각 1명, 제생원 제거 1명, 소격전 별좌 1명)만 인원이 늘었다. 공공기관의 총인원은 141명에서 84명으로 줄였다. 정확히 40% 감원이다. 거의 모든 기관의 최고책임자(제조)의 숫자를 줄였고, 부제조 자리는 없앴다. 이게 계묘대개혁(1423년)이다.

세종 18년(1436년)에는 재위 기간 중 최대의 가뭄인 병진대가뭄이 닥쳤다. 5월부터 8월까지 석 달이나 비가 없었다. 5월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제사를 올렸지만 효과가 없었다. 공공부문 개혁이 부진한 때문이라고 생각한 세종은 국가 경비 50% 절감 계획을 의정부에 던졌다. 이 안의 핵심은 갑사(직업군인)의 숫자를 줄이는 데 있었다. 세종은 내심 갑사를 줄이고 싶었다. 즉위 직후 부왕의 경비를 위해 갑사의 수를 두 배로 늘린 이후 한 번도 갑사 조직을 건드린 적이 없었다.

심도원(호조판서)을 제외한 모든 대신들은 반대였다. 갑사를 다른 부서로 전직시키자는 안(하연, 형조판서), 당상관 이상의 고위직 무관을 줄이자는 의견(황희, 영의정), 다른 부서 용관을 대신 줄이자는 의견(신개, 의정부참찬)이 나왔다. 반대가 거세지자 세종은 이렇게 말했다. “이 일은 가볍게 고쳐 시행할 것이 아니다. 내 다시 생각해 보겠다.”(세종실록 18년 5월 22일)

신하들의 반대로 세종은 생각을 잠시 묻어 두었다가 9년 뒤인 세종 27년(1445년) 7월 18일 전격적으로 갑사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6000명의 갑사가 1000명씩 6개 번으로 교대 근무하던 것을 1500명씩 3개 번으로 나누어 병력을 4500명으로 줄인 것이다.

식례상정소 세워 경비 절감
세종은 경비 절감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모든 관공서의 물건들이 백성들로부터 나왔으니 마땅히 절약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기관의 경비 지출에 대한 매뉴얼과 기준이 없어서 들쭉날쭉하기가 그지없었다. 세종은 이렇게 지시했다. “국가의 씀씀이가 낭비되는 것이 있을까 염려되니 상세하게 밝은 관리를 택하여 각 기관의 필요한 경비와 식례를 낱낱이 결정하여 보고하라.”(세종실록 22년 4월 21일)

이에 따라 그해 5월 식례상정소가 설치되었고 6년 뒤엔 모든 정부기관에 식례상정소를 설치했다. 경비절감 효과는 ‘대박’이었다. 악기 도색 비용은 80.1%, 대궐과 능의 칠 비용은 70.6%, 대가(임금의 가마)의 첩금 비용은 60%, 외교용 진헌통의 금도색 비용도 39% 절감됐다.

세종의 공공부문 개혁이 성공한 이유는 이렇게 요약된다. 첫째, 세종이 직접 챙겼다. 둘째, 의견을 묻는 등 신하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유도했다. 셋째, 예외 없이 모든 부서에서 신속하게 개혁을 단행했다. 넷째, 지속적인 개혁을 위해 식례상정소와 같은 ‘시스템’을 구축했다. 다섯째, 세종 본인과 왕족이 모두 적극적으로 솔선수범했다. 최근 추진되고 있는 정부의 공공부문 개혁이 눈여겨봐야 할 부분들이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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