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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형사사법도 '안전 중심'으로 재편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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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여객선 세월호 침몰 당시의 상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국민의 분노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선장 등 일부 승무원의 행태는 도덕적 해이를 넘어 중대 범죄로 볼 수밖에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제 소중한 생명을 최우선 가치로 두기 위해서라도 형사사법제도를 안전 중심으로 바꿔야 할 때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어제 세월호 이준석 선장에 대해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형이 가능한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도주 선박의 선장 또는 승무원 가중처벌)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선장은 지난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3등 항해사에게 조타실 운영을 맡겨 침몰 사고를 낸 뒤 홀로 탈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승무원 2명에 대해서도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선장은 “승객을 안심시키는 방송을 하라”는 말을 안내데스크에 전달한 직후 탈출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는 상태다. 지금까지 나타난 정황을 보면 이 선장이 비정상적인 행태로 이번 사고의 피해를 키웠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현행 선원법 제10조는 “선장은 여객이 다 내릴 때까지 선박을 떠나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장의 재선(在船)의무를 규정한 건 선박 사고 등이 발생할 경우 구조활동 등을 위한 지휘명령체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같은 법 제11조는 ‘선장은 선박에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에는 인명 등을 구조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다하여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문제는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 의무 위반인데도 법 적용에 혼선이 있다는 사실이다. 앞서 검찰이 검토해 왔던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하면 5년 이하 금고나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선원법 11조 위반 혐의를 적용하더라도 법정형이 5년 이하의 징역에 불과하다. 선장 한 사람의 비상식적 판단으로 수백 명이 숨지더라도 몇 년 교도소에서 살다 나오면 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법조계 일각에서 ‘부작위(不作爲)에 의한 살인죄’ 적용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사람이 숨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 살인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2012년 이탈리아 검찰은 대형 크루즈선이 좌초한 뒤 먼저 도망친 선장에 대해 2697년형을 구형한 바 있다.

 법 적용의 혼란을 막고 대형 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선 관련 법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 나아가 선박회사 등 법인의 형사책임을 인정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법인의 형사책임을 일부 양벌(兩罰)규정에 한해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선 법인 구성원이 업무 처리 과정에서 범죄를 저지른 경우 법인에 대해서도 징벌적 벌금을 물리고 있다. 법인이 직접 형사책임을 지게 함으로써 내부 통제를 강화하고 범죄 재발을 막자는 것이다. 우리도 안전사고 대비를 게을리하는 기업에 대해선 ‘안전관리를 잘못하다간 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위험 사회’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선 사회 시스템을 재편해야 한다. 형사사법제도도 그중 하나다. 이번 사고로 드러난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고쳐나가는 것이 우리 사회가 학생들의 안타까운 희생에 애도를 표하고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는 자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