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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꼭 살아와야 하는데 … " 아들 이름 옆 동그라미 치며 오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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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7일 세월호 실종자 가족의 임시 거처가 마련된 전남 진도군 실내체육관. 사고 발생 하루가 지났지만 아들딸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한 부모의 절규와 탄식이 이어졌다. “제발 우리 아이를 살려 달라”며 두 손 모아 빌거나 발을 동동 굴렀다. 진도 실내체육관에는 실종자 가족 600여 명이 모여 있다.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학부모들은 이날 하루 동안 천국과 지옥을 몇 번씩 오갔다. ‘아이들이 살아 있다’는 글이 카카오톡·페이스북 등에 뜨면 환호했다. 하지만 곧 “해경이나 군이 공식적으로 확인한 게 아니다”는 얘기가 나오면 고개를 떨어뜨렸다. 일부에서는 “애가 살아 있다는데 왜 정부는 적극적으로 구조를 안 하느냐. 빨리 살려내라”며 울부짖기도 했다.

 게시판에 사망·생존자 명단을 새로 적을 때마다 체육관 여기저기서 한숨이 나왔다. 사망자 이름에는 연필로 밑줄이 그어졌고, 생존자에는 동그라미가 쳐졌다. 아무런 표시가 없으면 실종자였다.

 박영인(5반)군의 어머니는 아들의 사망소식에 “안 돼!”하며 주저앉았다. 바닥에 엎드려 한참을 오열하던 박군의 어머니는 끝내 실신해 병원으로 실려 갔다. 김호연(4반)군의 어머니는 아무런 표시가 돼 있지 않은 아들의 이름에 대고 연신 검지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사망자로 확인된 학생 3명이 우리 아이랑 같은 반이에요. 살아 있어야 하는데…”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일부 학부모는 실신한 채 링거 주사를 꽂고 누워 있었다. 주변에서 병원에 갈 것을 권유했지만 아들딸의 소식이 언제 올지 모른다며 체육관을 떠나지 않았다. 한 어머니는 “혹시나 아들한테 소식이 올까 봐 휴대전화에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고 말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학부모의 슬픔은 분노로 바뀌고 있다. ‘내 아이가 살아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지고 있어서다. 가족들은 배가 침몰된 지 24시간이 지났는데도 배에 투입할 산소공급장치 설치가 늦어지는 것에 불만을 터트렸다.

 이날 오후 1시쯤 해양수산부 관계자가 “오후 5시쯤 공기주입장치를 이용해 끄트머리만 남고 가라앉은 배를 수면 위로 올려 보겠다”고 했다. 그러자 가족들은 “배 안에 갇힌 아이들은 한시가 급한데 4시간 뒤에나 해 보겠다니 말이 되느냐”고 항의했다. 일부 학부모는 “모두가 거짓말쟁이”라며 해수부 관계자의 옷을 찢고 해경 간부의 멱살을 잡았다.

 진도 팽목항의 임시상황실도 마찬가지였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부모들의 통곡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한 어머니는 자원봉사자에게 받은 일회용 비옷을 입고 “아들이 있다”며 항구 앞에서 꼼짝도 안 했다. 팽목항에서는 이날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향후 계획을 논의했지만 의견 충돌로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한편 구조됐으나 부모와 오빠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해 애를 태우던 권지연(5)양의 할머니와 고모가 이날 목포 한국병원을 찾아 권양을 데려갔다. 권양은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진도=장대석·권철암·이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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