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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 전문가가 경영하는 회사, 비전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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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이토 소장은 인생에서 가장 큰 실패로 ‘대학 중퇴’를 꼽았다. 그는 “미국 대학생들 사이에 대학 중퇴를 훈장처럼 여기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사진 LG CNS]

“삼성과 LG는 아직 소프트웨어 역량이 부족하다. 전 세계 소프트웨어 산업의 리더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미국, 특히 실리콘밸리가 될 것이다.”

 ‘융합의 전도사’로 잘 알려진 조이 이토(48)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 소장이 한국 기업의 혁신을 주문했다. 이토 소장은 17일 LG CNS가 주최한 정보기술(IT) 콘퍼런스 ‘엔트루월드(Entrue World) 2014’에 기조연설자로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연설 뒤 인터뷰에서 그는 “한국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점인 모바일 기술을 중심으로, 사물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 시대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리콘밸리와 긴밀히 협력하고, 관련 전문가들을 영입해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삼성과 LG는 MIT 미디어랩에 연간 수십억원의 후원금을 대고 있다. 연구원들을 미디어랩에 파견하고, 연간 두 차례 봄·가을에 열리는 MIT 미디어랩 ‘데모데이’에 후원 기업으로 참석해 아이디어를 공유한다. 하지만 이토 소장은 두 후원 기업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혁신은 아직 시기상조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 그는 하드웨어 전문가가 기업의 경영을 맡고 있는 점을 들었다. 그는 “‘인터넷 이후(AI)’ 시대에는 회사의 권력을 소프트웨어를 아는 젊은 사람들에게 이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문했다.

 그는 인류 역사를 ‘BI(Before Internet)’와 ‘AI(After Internet)’, 즉 인터넷이 있기 전과 후로 구분했다. 기원전(BC)과 기원후(AD)를 빗댄 표현이다. 그는 AI의 세상은 전과 달리 복잡하고 혼란스러우며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따라서 생각하는 방식에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고 ‘튀는 아이디어’를 장려하는 문화가 있는 미국, 그중에서도 실리콘밸리가 세계 소프트웨어의 리더 자리를 유지하고, 글로벌 업체도 당분간 실리콘밸리에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의 게임산업 규제를 닫힌 사고의 예로 들었다. 그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서 ‘온라인게임(MMORPG)은 협업과 문제해결 방법 등에 대해 경영전문대학원(MBA)보다 더 많은 걸 가르쳐 준다고 할 정도인데 한국 사회는 게임으로 인한 부작용에만 초점을 맞춘다”고 지적했다. 그는 “교회도 너무 자주 가면 좋지 않다고 할 수 있는 것처럼 어떤 것이나 부작용은 있을 수 있다”며 “내가 한국 기업인이라면 정부의 게임 규제에 맞서 싸우겠다”고 덧붙였다.

 미국·일본 이중국적자인 이토 소장은 일본과 중국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 그는 “일본 사회는 폐쇄적이고 정부는 변화하려고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단기 이익에 치중하는 금융 시스템과 초고령화, 혁신이 절실한 교육 시스템 등이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을 맹추격하고 있는 중국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특히 중국 정부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 당국은 혁신을 아는 젊은 소프트웨어 인재들을 억누르고, 심지어는 체포·구금까지 하고 있다”며 “이런 환경에서는 절대로 수준급의 소프트웨어 산업이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MIT 미디어랩은 중국 정부에 억압받고 있는 소프트웨어 인재들을 영입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최준호 기자

◆조이 이토=일본명 이토 조이치(伊藤穰一). 1966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했다. 시카고대학을 중퇴하고 나이트클럽 DJ, 영화 제작자, 인터넷쇼핑 운영자 등 다채로운 경력을 쌓았다. 트위터 등에 투자한 벤처투자가이며 현재 웹브라우저 파이어폭스 등을 개발한 모잴라재단의 임원이기도 하다. 2011년 제4대 MIT 미디어랩 소장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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